제 2대 황제 티베리우스
젊은 시절 상당히 불행한 가정사를 겪은 탓에,
티베리우스는 나이가 들수록 성격이 괴팍해져 갔고,
말년에 들어선 티베리우스와의 저녁 식사를 초대받는 손님들은 지옥이 따로 없었다.
티베리우스는 젊었을 적 군단병들과 함께 동거동락했던 인물이라 '이것이 과연 황제의 수라상인가?'라고 손님들이 경악할 정도로 검소하다 못해 궁상맞을 정도였는데, 더 심각한 것은, 노년의 티베리우스가 가장 좋아한 '놀이'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헤카베(그리스 신화 속 트로이의 왕비)의 어머니는 누구인가?" 또는 "세이렌이 불렀던 노래는 무엇인가?"와 같은 신화와 관련된 대중적이지 않은 질문을 던지고는, 혼자서 즐거워하는, 다른 이가 보기에 악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제 4대 황제 클라우디우스
선천적 장애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성실성과 노력으로
제국의 행정관료 시스템을 한 층 진보시킨 명군 클라우디우스는 후세의 학자들에게 제정 초기의 숨은 명군으로 재평가를 받았지만, 그의 살사생전에는 평가가 그다지 좋지 못했다.
그는 검투 시합의 열렬한 팬이자 대단한 후원자였는데, 죽어가는 검투사들의 얼굴을 보는 것을 좋아했기에 시민들에게 잔인하고 피에 목마른 황제라는 악평을 얻고 말았다.
또한 뇌성마비로 인해 젊은 시절 역사 연구에 몰두하며 반평생을 보냈었던 탓인지 황제가 된 이후 시민들 앞에서 자신만이 이해할 수 있는 시시한 농담을 하다가 분위기를 시원하게 만드는 좋지 않은 버릇이 있었다고 한다.
제 5대 황제 네로
열렬한 그리스 문화의 팬이었던 네로는 지식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직접 그리스 순방에 나섰다.
그의 순방 목적은 국정을 살피기 보다는 올림피아, 이스트리아, 델포이 등의 성지를 순례하고
그곳에서 개최되는 주요 제전에 몸소 출전하는 것이었기에 올림픽이 네로의 일정에 맞춰 사상 최초로 조기개최되는 촌극까지 벌어졌다.
당연히 우승자는 사전에 이미 정해져 있었고, 심판들과 우승 후보들에게는 미리 두둑하게 격려금이 하사되었다.
음악에 관해 누구보다 뜨거운 열정을 가진 네로는 당대 최고의 리라 연주자를 궁정 스승으로 고용하였고, 처음에는 친구들을 상대로 개인 연주회를 가지다가, 나중에 가서는 신민들 앞에서 황제의 연주회를 열었다.
네로가 '작고 불분명하며 허스키한' 목소리로 그의 취향이었던 신화 속 남녀들의 비극을 리라 반주에 맞춰 노래하는 동안 청중들은 프라이토리아니 근위병들이 매의 눈으로 감시하는 가운데 좌석 이탈을 금지당한 채 네로의 연주와 노래를 들어야만 했다.
네로가 밤 늦게까지 몇 시간은 기본으로 독주회를 통에 청중들은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갔다.
훗날 위대한 황제가 될 베스파시아누스는 도저히 버티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다가 섬으로 귀양을 가야 했고, 심지어 어떻게든 극장 밖으로 탈출하기 위해 졸도해 쓰러진 척을 한 관객들까지 있었다고 전해진다.
제 8대 황제 비텔리우스
비텔리우스는 별명이 '로마의 돼지'일 정도로 폭식을 일삼았는데 '로마 귀족들이 배가 부르면
토하고 다시 먹는다'는 속설의 유래가 다름 아닌 비텔리우스 황제였다.
그는 한 연회에서 생선 2천마리, 새 7천 마리를 요리 재료로 사용할 정도로 사치를 부렸고, 본인과 측근들의 유흥만을 위한 음식값만으로 무려 9억 세스테르티우스를 썼는데, 아우구스투스 시대의 로마 제국 일년 세입이 평균 4천만 세스테르티우스였음을 생각하면 gdp 증가를 감안해도 이는 말 그대로 개ㆍ돼지 같은 소비였다.
제14대 황제 하드리아누스
위대한 오현제 중 한 명인 하드리아누스는, 네로나 콤모두스처럼 국정을 팽개치고 사욕을 채우려다 제국을 쇄락을 길로 몰아넣지는 않았지만, 그 또한 그리스 문화와 예술에 관심이 깊었다.
그는 그리스어로 수많은 시와 편지를 썼고(아쉽게도 오늘날에는 거의 전해지지 않는다), 자신이 그리스어 노래와 플루트 연주에 능하다고 공공연히 자랑하곤 했다.
하지만 예술에 대한 하드리아누스의 열정은 왜곡된 집착으로 다소 빛이 바래고 말았다.
그는 '콜로폰의 안티마쿠스'라는 고대의 무명에 가까운 시인의 열렬한 팬이었는데 안티마쿠스의 문체를 그대로 따라 시를 짓고, 자서전도 썼다.
물론 개인의 취향이야 존중 받아야겠지만, 콜로폰의 안티마쿠스가 일리아스를 쓴 호메로스보다 위대하다고 주장하고 다닌 건 아무리 봐도 상식적으로 도를 넘은 행동이었다.
제 17대 황제 콤모두스
그리스 문화의 팬이라면 빠질 수 없는 콤모두스.
올림피아 제전에 직접 출전하기까지 한 네로보다는 집착의 농도가 옅지만 콤모두스 황제역시 평범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는 그리스 신화의 영웅 헤라클레스를 모방하는 것을 즐겼는데,(위 사진의 조각상도 헤라클레스를 코스프레한 것이다)시민들에게 자신이 헤라클레스와 같은 '10상남자' 임을 보여주기 위해 콜로세움에서 사자 가죽을 뒤집어 쓴 채 표범, 사자, 황소 등의 짐승들을 육중한 곤봉으로 때려잡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고 한다.
(물론 황제의 안전을 위해 짐승들은 며칠동안 굶주려 거의 아사 상태였고, 시민들은 어이없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심지어 한번은 헤라클레스가 헤라가 보낸 거대 게와 싸운 장면을 재현한답시고 살아있는 킹크랩을 발로 밟아 죽이는 기행을 보여주기도 했다.
제 23대 황제 엘라가발루스
엘라가발루스는 로마 역사상 가장 난잡하고 방탕한 취미생활을 보낸 황제로서 그는 연회에 초대받은 손님들에게 말똥이나 쓰레기를 넣은 음식을 대접하여 강제로 먹였고, 행사 때 꽃잎을 마구 퍼부어 질식사를 당하는 사람이 나오기도 했다.
10대 미소녀들에게 재갈과 마구를 물려 말처럼 대하며 이륜마차에 묶어 로마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시민들에게 금화를 던지는 등 각종 악행을 저질렀다.
무엇보다 엘라가발루스는 양성애자 성향이었는데,
"짐을 여자로 만들면 제국의 절반을 주겠노라"라고 포고령을 내린데다 바텀 역할을 즐겨 로마인들에게 경멸을 받았다.
결국 엘라가발루스는 로마인에게 최악의 불명예인 기록말살형, 국가의 적, 탄핵이라는 최후를 맞이했다.
제 52대 황제 호노리우스
테오도시우스 대제의 아들이자 서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 호노리우스는 아버지의 유전자를 물려받기는 했나 싶을 정도로 제국의 통치에 신통치 못했다.
그는 게르만족이 국경을 넘어와 제국 곳곳을 약탈하는 와중에도 닭을 기르는 것을 취미로 삼았고, 그 중 가장 사랑하는 닭에게 '로마'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 일화에 따르면 서고트족의 대왕 알라리크가 로마 성문을 뚫고 들어와 약탈을 자행하여 로마가 혼란에 빠졌다고 전령이 전하자 호노리우스는 슬피 울며 "우리 닭 로마가 죽다니" 라며 오열하였는데
전령이 그것이 아니라 우리의 도시 로마가 함락당했다고 설명하자 호노리우스는 안색이 바뀌며 "뭐야 난 또 닭 이야기인 줄 알았네" 라며 안도했다고 한다.
제 96대 황제 바실리오스 2세
동로마의 중흥기를 이끈 명군 바실리오스 2세는 취미가 전혀 없었던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는 음악이나 미술 같은 문화 활동에 무관심한 건 물론이었으며 좋아하는 음식이나 의복도 대충 차려 입고 씻는 것 조차 싫어하였다.
웅장한 건축물이나 성대한 의식은 재정만 낭비하는 귀찮은 짓이라며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거기다 이성에게도 관심이 없어던 황제였기에 평생 결혼을 하지않고 독신으로 살았다.
결혼만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황제라면 하나쯤 있을 여자와의 사랑 일화 자체가 단 하나도 전해지지 않는다.(하지만 행정력 하나만큼은 엄청난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