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위의 그림은 부분정보들만 봤을 때는 알 수 없지만,
가려놓고 보면 그것이 알파벳 B였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이처럼 우리가 무언가를 볼 때는 뇌의 시각시스템이 물체의 가려진 부분을 자동적으로 추론하고 계산하여 메우는 과정을 거친다.
우리 앞, 몸 밖에는 광대하게 펼쳐진 시각자극들의 배열이 있다.
이런 물리적 감각정보들의 홍수 속에서 환경에 관한 모호성(ambiguity)과 불확실성을 명백하게 해석하려는 경향성을 우리의 뇌는 효율적인 생존을 위해 갖출 수밖에 없다.
인간의 의식이나 지각과정을 이해하려면 바로 이 모호성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데,
감각 수준에 등록되는 하나의 정보가 지각이나 정체파악 수준에서는 여러 가지로 해석되는 메커니즘이
인간의 의식과 정신과정을 이해하는 한 가지 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입체의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한 순간에는 오직 하나만을 의식적으로 경험)
이것은 의도적인 의식의 '선택적 주의'까지 넘어간다
위의 그림들로 설명하면 시각정보가 망막에 맺히는 정보 안에는 엄연히 입 벌린 키위 세 조각이 있을 뿐이지 완전한 삼각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매끈한 삼각형을 경험한다.
완전한 육면체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고 듬성듬성한 검은 원이 있을 뿐이지만, 부족한 단서의 사전지식이나 축척된 선행경험에 근거하여 부분적인 정보를 메워버려서 육면체로서 경험할 수 있다.
위의 그림은 이미 봤던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 그림은 MIT의 심리학자 에드워드 아델슨교수가 만든 체커보드 착시이다.
워낙 유명해져 버린 그림이라 대부분 다 짐작하겠지만, 알겠지만 a와 b는 사실 같은 색이다.
이렇듯이 실제 망막상에 맺히는 정보는 동일함에도 정체파악 수준에서는 다르게 경험하게 된다.
감각 자극이 그대로 머리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 같아도 그 밑바닥에서는 뭔가 복잡한 계산이 작용하고 있으며
우리가 지각하는 현실은 항상 그 계산의 결과지 실재 그 자체가 아니다.
이 빨간색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일까?
우리의 빨강 경험은 저기 토마토 위에, 혹은 모니터에 저렇게 실재(distal stimulus)하는 것이 아니다.
환경에 발을 뻗고 있는 육신이라는 '한계'를 가진 동물에 불과한 우리 몸이 이미 보유하고 있는 체계(sensation)가 우리 몸 밖 미지의 세계에 있는 정보들과 접촉하여 맞물리면서(proximal stimulus) 그 정보를 우리의 뇌가 빨강경험(perception)이라는 형태로 구성해낸 환상이자 착각인 것이다.
우리는 물리적이고 독립적이며 직접적으로 환경과 접촉하고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뇌라는 전매상이 독점하는 단편정보를 통해 그렇게 착각하게끔 정교하게 속고 있는 소박실재론자(naive realist) 일뿐이다.
우리 몸 밖 미지의 세계에서 우리 생존에 필요한 정보를 우리가 알아먹는 형태로 가공하는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일 뿐인 것이다.
시각자극뿐만 아니라 다른 감각은 또 어떨까?
자, 상상해 보자.
숲 속에서 거대한 나무가 쓰러져 꽈과광! 하고 울렸다.
만약 그 숲에 아무도 없었다면 이때 소리는 어디에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소리라는 것의 본질은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물리적으로 소리란 놈의 본질은 공기나 다른
매체에서의 압력변화이다.
하지만 소리에 대한 지각적 정의는 그 변화를 접할 때 우리가 겪는 경험이다.
우리가 이미 보유하고 있는 감각적 형태가 요 모양으로 생겨서, 하필 그 모양으로 생긴 감각계가 그 공기의 압력 변화 정보를 요 모양으로 정보를 채집하고, 그 채집된 정보를 우리의 뇌가 우리의 생존에 유용한 형 때로 뽑아내는 정보, 그것이 소리라는 경험의 본질이다.
고로... 답은 소리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숲에 아무도 없었고, 경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다면 우리는 굉장히 상식과 어긋나는 가능성과 마주치게 된다.
사람들은 흔히 이런 종류의 착시효과들을 인간의 인식이 얼마나 믿을 수 없는지를 나타내는 증거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사실 심리학자들의 의도는 반대다.
이런 착시그림은 인간의 인식의 정교함을 드러내기 위해 심리학자들이 애를 써서 고안해낸 것이다.
착각은 우리가 세상을 잘못 보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세상을 잘 보려고 하기 때문에 생겨난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우리는 절대 이 세상에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자유의지를 지닌 행위자로써, 물리적 세계의 대상과 직접 접촉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허구이고 환상이며 몸밖 미지의 세계는 절대 직접적으로 알 수 있지 않다. 하지만 몸 밖의 미지의 세계에는 분명히 '무언가'가 있다
그 정보를 우리는 최대한도로, 가지고 있는 육신이라는 자원의 한계를 최대한 활용하여, 우리가 처한 상황에 유용하게 파악하기 위하여 발버둥을 친다.
하지만 그 전략은 불행하게도 가끔 의도 외 다른 side effect를 갖는다.
그것이 착시고 착각이다.
그것을 역으로 들여다볼 때 마음의 작동방식과 설계도를 좀 더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그런 우리의 의식체계가 작동하는 방식을 알아내기 위해 여러 가지 착시를 만들어낸다.
위의 그림도 그런 시도의 일환인데, 우리는 위의 그림을 통해 시각 체계는 한 부분의 밝기를 결정하는 단순한 작업에도 다양한 맥락 정보(기둥의 그림자, 체커보드의 무늬 등)를 고려해서 자동적으로 계산해 나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과정을 역으로 이용하면 바로 저런 착시를 만들 수 있다.
또한 이 원리를 우리가 우리 머릿속에서 돌아가는 것과 비슷한 알고리즘으로 구현할 수 있다면,
'그런 것처럼 보이는'정도가 아니라 '그런' 이미지 자체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
바로 이런 식으로 심리학자들은 여러 가지 착시를 만들어봄으로써 무의식적 계산 과정에 대해 여러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증거를 하나씩 모아 시각 체계와 의식의 원리를 파헤쳐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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