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 양

근대 영국의 굴뚝청소부

MeRCuRyNim 2023. 2. 21.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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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0년 성인 굴뚝청소부

1200년대 이래 영국에서 대형 굴뚝이 등장하였다.

영국에서 가장 오래 존재하는 굴뚝 유적은 1185년 요크셔의 코니스브로 성(conisbrough castle)에서 시작되었는데,

conisbrough castle의 fireplace chimney 형태 화덕


이때부터 영국인은 원룸 하우스 한가운데에서 타오르는 모닥불을 벽난로로 대체하게 된다.

굴뚝의 등장 이후 400년간, 방은 전문화되기 시작했고 방이 작거나 방의 수가 많은 집들도 난방의 수혜를 입기 시작한다.

벽난로가 점점 대중화되기 시작하면서 어느새부터인가 연료로 사용하던 나무를 대신해 이탄(갈탄)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탄을 태우다 보니 연통 내부의 안쪽 표면에 가연성 크레오소테 층과 그을음으로 퇴적되기 시작했다.

1585년 제임스 1세는 연 4회 굴뚝을 청소하고 청소치 않는 이는 3실링 4펜스의 벌금을 물도록 법을 성문화할 정도였는데, 이 법령 덕분에  굴뚝청소부라는 새로운 직업이 등장하게 된다.

이전까지의 굴뚝은 그저 연기의 통풍구였지만, 벽난로가 대중화된 이후에는 뜨거운 가연성 가스가 공기와 함께 불속을 통과하여 밖으로 이동하는 통로가 되었고, 시대가 흐르며 기술이 더욱 발달되면서 화재에 대한 안정성을 위해 더욱더 좁은 배관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런던 대화재 이전까지의 굴뚝은 그 크기를 전혀 좁히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1666년 일어난 런던 대화재는 나흘간 13200채의 주택과 87개의 대형건물들을 불태우고 8만 명의 이재민을 낳았다.

화재가 쉽사리 나지 않을 습한 기후의 영국에서 화재가 발생하기 좋은 환경이 되도록 300년간 방치한 결과였다.

영국 정부의 공식 발표에 의해 사망자는 6명이라던 런던 대화재는 굴뚝을 기점으로 촉발되었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으며 왕이 직접 칙령으로 법을 조례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대화재로 인한 사망자는 소수에 그쳤지만 대화재 이전인 1665년 런던 대 역병으로 8만 명의 사람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기 때문에 재난에 대한 봐주기식 행정을 할 수 없었던 측면도 있다.

런던시는 노숙자를 내쫓고 거리를 청소했으며, 이왕 재건사업을 할 겸 굴뚝에 대한 소방안전 법과 표준을 만들게 된다.

새 굴뚝의 표준 치수는
9인치(23cm) × 14인치(36cm)로 규정되었다.

이 정도의 노트북 크기이다.

굴뚝청소 방법


결국 기존 굴뚝 청소부들이 최소 9제곱인치까지 줄어드는 굴뚝을 청소하고자 어린 아동들을 잡아다가 도제식으로 가르치며 굴뚝을 청소하게 시켰다.

굴뚝 뜨거운 온도가 청소가 가능한 온도로 식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기 때문에 종종 뜨거운 굴뚝이나 덜 탄 굴뚝에 들어가는 일이 잦았다.

성인 청소부들은 이들 아동에게 피부를 강화시킨다는 목적하에 몸을 불에 수시로 쬐게 하면서 동시에 소금물을 발라 피부가 딱딱하게 굳어지도록 유도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 도제식

도제(徒弟)는 상인과 장인의 직업 교육 제도이며 젊은 세대를 업무에 종사시키는 제도를 의미한다.​​


무협지에 나오는 달군 모래에 주먹을 넣었다 뺐다 하는(철사장) 야만적인 일을 아동 대상으로 자행한 것이었는데, 아이들은 벌거벗은 채로 아래에서 위로 무릎과 발바닥을 벽에 대면서 기어올라와야 했고

굴뚝 안의 매연을 마시면서 일했기 때문에 질식하거나 발암물질이 성기에 들어가 성 기능을 잃거나 고환 암을 앓다 죽는 경우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더라도 성 불구자가 되거나 온몸에 화상과 흉터 자국을 가지고 살아야 했는데, 이들은 대부분 도제식 굴뚝청소부의 관리인이 되어 어린아이들을 잡아들이고 도제식으로 가르치다가 살아남는 자에게 사업을 물려주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이렇게 험하고 궂은일이다 보니 굴뚝청소부들을 노비나 천민 바라보듯이 조롱하는 시선이 생겨났는데 영국의 사회적 카스트라고도 볼 수 있었다.​​

카스트의 나라 인도


하지만, 다행히도 1775년부터 굴뚝청소의 안전에 관한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어 자그마치 100년 1875년쯤에 법적으로 규제하기 위한 금지 법률이 제정되었다(법의 제정후에  관습화되기까지 또 100년이 지나서야 겨우 법이 상용화될 정도로 영국은 변화와 거리가 먼 국가이다)

그들이 아동 노동자를 구매하는 방법은 고아원이나 거지들을 포섭하는 것이었는데 고아원에서 아동들을 사 올 때는 기술과 지식을 가르쳐 주고 일주일에 한번 씻기고, 두 번 옷을 갈아입히며 교회에 다니게 한다는 조건하에 아동들이 팔려갔다.

아이들은 7실링(=84펜스 1실링당 12펜스) ~ 4 기니(=1온스의 금. 1기니 당 1파운드=20실링 ~ 30실링 가치) 정도에 팔려나갔다.

팔려나간 고아들은 7년간 한 푼의 돈도 받지 못했으며
그저 같이 밥만 먹고살았으니 실제로도 천민의 생활을 하고 있던 것이었다.

굴뚝을 청소하면 받는 청소비 외에도 재를 모으면 숯 가루, 재 가루, 그을음 등을 얻을 수 있었는데, 그 재를 모아놓으면 1부 셸(60파운드 무게/ 27.215kg 정도)
당 1/9 정도의 곡물(약 3kg) 정도를 받을 수 있었다.

대략 이와 같은 짓을 하루에 네 다섯 번 한 이후에 재를 채우는 보자기를 침낭 삼아 잠이 들었다.

이들은 길거리에서 soot oh- sweep!!
(재 엣ㅡ청~소!!)이라고 소리치며 고객들을 모았다.

씻는 건 1년에 3번 씻는 것도 많이 씻는 것이었다고 하니 피부병이 매우 심했을 것이라 예상되며, 영국의 불가촉천민이라 할 수 있을 지경이었다.



위 그림은 지하실이 있는 4층짜리 집에 있는 7층 높이 굴뚝의 단면으로, 메카닉스 매거진의 1834년 삽화로, 기계 청소와 굴뚝 청소의 대조를 보여 준다.

A. 수직 연도, 수평 연도, 그리고 브러시가 어려운 두 개의 직각 굴곡이 있는 수직 상승이 제공되는 난로.

B. 남자아이가 등, 팔꿈치 및 무릎을 사용하여 오르는 길고 곧은 연도(14인치, 9인치)

C. 2층 난로에서 나오는 짧은 연도를 기어오르는 소년은 굴뚝의 꼭대기에 다다랐지만, 굴뚝 꼭대기의 지름이 너무 작아서 밖으로 나갈 수 없다.

E.는 재앙을 나타낸다.
굴뚝을 오르는 소년은 무릎이 턱에 끼인 채 연도에 갇혀 있다.

G. 연통을 기계적인 방법으로 연도 청소가 가능하도록 하는 방법.

H. 연통 내부에 쌓인 그을음에 질식한 죽은 남자아이.

연도의 구조만 본다면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는 것이 경이로운 정도이다.


미국은 이렇게 힘든 일을 흑인들에게 시켰지만, 반면에 영국은 흑인이나 백인이나 어린아이의 인권이 똑같이 무시되어 인종을 가리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1875년에 굴뚝청소에 대한 규제가 법적으로 제정되었다.


현대에는 굴뚝청소를 위해 기계를 사용하고 있으며, 시대의 변화에 따라 고소득 직종이 되었고, 많은 건장한 성인 남성들이 굴뚝청소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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