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 양

스페인의 멕시코 정복 이후 멕시코인들의 생활

MeRCuRyNim 2023. 2. 24.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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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멕시코는 인구의 대다수가 카톨릭 신자이며,


스페인어를 구사하고, 인구의 60% 이상이 백인과 원주민의 혼혈인 메스티스인 국가인데 이것들은 모두 스페인의 점령 이후에 생긴 결과들로서 스페인이 오기 전까지 멕시코인들은 100개가 넘는 언어를 가지고 있었으며 다신교의 사회였다.

몬테수마 황제를 만난 코르테즈


그렇다면 에르난 코르테스가 멕시코를 점령 후 멕시코에는 어떠한 변화들이 일어났을까?


에르난 코르테즈가 아즈텍 제국을 점령한 후 가장 서둘렀던 일은 바로 종교를 보급하는 일이었다.

아즈텍의 인신공양 인신공양은 스페인 정복자들에게 혐오스럽게 여겨졌다


종교는 21세기에도 IS 같은 광신도들이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도구로 쓰이는데  당시에도 '신이 원했다'라는 문구만으로도 이교도에게 행하는 모든 잔악한 행동을 정당화시킬 수 있었다.


"그들은 일용하는 곡식과 채소를 반죽해 우상을 만들었고 아직도 가슴속에서 뛰고 있는 사람 심장을 꺼내 함께 빚는다.

이렇게 우상은 만들고 인디오들은 더 많은 심장을 우상에게 봉헌한다".


-에르난 코르테스 멕시코 정복기 중 일부


코르테즈는 아즈텍인들이 신에게 인간을 공물로 바치던 희생 의식을 금지 시켰으며, 아즈텍인들의 신전에 성모마리아의 초상과 예수 및 기타 성인들의 초상을 걸었고, 인디오들이 떠받들던 신을 우상숭배라 하여 파괴해 버렸다.

그리고 1525년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수도사들이 멕시코에 도착하면서 카톨릭 보급은 더욱 활발하게 보급된다.

여자들을 인신공양에서 구출하는 코르테즈


스페인 병사들은 사원을 약탈하고, 아즈텍 성직자들을 학살했으며, 피라미드를 파괴하며 상형문자로 기록된 사본들을 불살라버렸다.

이러한 폭력적인 행위 끝에 스페인 선교사들은 귀족층을 포섭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지만, 대다수 귀족층들은 변화 속에서 자신들이 지켜온 전통 신앙과 스페인에서 보급되는 카톨릭 신앙을 사이에 두고 우리나라 근현대사 유학자들처럼 많은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여자들을 인신공양에서 해방시킨 코르테즈


"존경하는 코르테스 각하 우리는 무지하지만 각하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우리들은 그저 평범한 사람들일 뿐입니다.

각하는 우리가 만물의 주인이자 하늘의 주인을 모른다고 했습니다.

각하는 우리의 신이 진짜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태어나서 처음 듣는 말이었습니다.

각하의 말을 들은 우리는 당황했고 심한 마음의 고통을 겪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대대로 지켜온 원칙은 우리가 신을 통해 살아가고 희생 제식은 우리에게 생명을 준다고 믿었습니다.        

-중략-​


그런데 이제 와서 우리의 전통을 버리라는 것입니까?

각하 우리 민족을 불행에 빠뜨리고 죽일 마음을 갖지 말아주십시오.

제발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시고 필요한 것을 고려해 주십시오.

각하는 우리를 통치하고 우리의 정부를 빼앗아 갔습니다.

우리의 정부를 뺏어간 것으로 충분치 않습니까?"


-에르난 코르테스와 아즈텍 귀족들의 대화​


위 대화의 내용처럼 아즈텍 귀족들은 카톨릭을 받아들이기는 했으나 마음속 깊은 곳까지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그 이유는 카톨릭이 가지고 있던 사상 중 '만인평등'은 아즈텍 귀족들에게 혼란을 가져왔고, 특히 아즈텍 귀족계급들은 종교행사를 통해 자신들의 권위와 특권을 유지해왔지만, 스페인에서 건너온 카톨릭 사제들이 자신들을 대신해 종교행사를 거행함으로써 자신들의 권위가 손상되고 특권을 빼앗겼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수도사들의 강압적인 노력으로 수만 명의 아즈텍인들이 카톨릭으로 개종했으나 개종한 사람들은 카톨릭에 대해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백인들은 나에게 자신들의 종교를 믿으라고 했고 나는 그들의 말을 따라 개종했습니다.

나는 지난 3년간 생각해 봤지만, 백인들의 종교는 쓰레기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들이 할 줄 아는 게 무엇이 있습니까?

그들은 우리 조상들이 믿어온 신들과는 달리 비를 내리게 할 수도 없습니다.

백인들이 그들의 신에 대해 하는 말들은 모두 거짓말입니다.

비를 내리게 하는 것도 우리 조상들의 신이고 그들을 노엽게 하면 안 됩니다.

다시 인간들을 재물로 바쳐서 우리 조상신들을 달래야 합니다."


과달루페 성모의 기적


한 농부가 과달루페 언덕에서 성모 마리아를 만났다는 이야기가 멕시코 전역에 퍼지게 되고, 이는 카톨릭이 널리 보급되는 결과를 낳았다.


스페인이 카톨릭을 보급하는 것에 반하는 아즈텍 종교 지도자들과 그들의 전통을 추구하는 귀족들은 스페인에 모여 반란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반란이 적발되고 말았다.

결국 반란을 꾀한 자들은 모두 화형에 처해졌고, 아즈텍의 전통을 지키려는 주요 인물들이 대부분 사라져 버리자 스페인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대부분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카톨릭이 멕시코에 보급되면서 생긴 또 하나의 변화는 일부일처제였다.

몇몇 이슬람 국가를 제외하고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다수 국가들은 일부일처제 국가이지만 우리나라도 불과 약 100년 전까지만 해도 첩을 두는 것이 흔했고, 아즈텍 제국도 마찬가지였다.

스페인인들은 아즈텍인들이 그동안 맺어온 일부다처제를 카톨릭의 원칙에 따라 인정하지 않았고, 두 번째, 세 번째 부인과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들은 모두 사생아로 기록되어 길거리로 쫓겨나야만 했다.

대다수 아즈텍 귀족들은 스페인의 이런 처사에 분노했지만, 일부 환영하는 계층도 있었는데 바로 첫째 부인의 자식들이었어.

이들은 스페인 덕분에 자신들의 재산을 보존할 수 있게 되었고 스페인에 충성하는 계층으로 변하게 된다.

스페인어는 어떻게 멕시코에 퍼졌을까?

말린체와 코르테즈


멕시코에는 스페인인들이 도착하기 전 100가지가 넘는 언어가 있었고, 멕시코를 정복한 스페인에 의사소통 문제는 멕시코를 원활히 통치하는데 큰 어려움이었다.

스페인의 전략은 우선 지배층을 포섭하는 것이었는데 귀족계층에게 스페인어 사용을 강제하면 하류층들도 스페인어를 사용할 것이란 생각에 주로 귀족층을 중심으로 스페인어를 가르쳤고, 어린 귀족들의 자제들을 강제로 수도사들이 운영하는 학교로 데려와 스페인어를 가르쳤는데, 이 방식은 아주 효율적인 결과로 나타났는데,

불과 50년도 지나지 않아서 인디오들이 스페인어를 사용할 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멕시코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메스티조들도 스페인의 점령기에 나타나게 되는데

코르테스에게 여자들을 바치는 타바스코 영주 타바스코 영주가 바친 여자 중 20명은 스페인 정복자들을 따라가 그들의 통역과 첩이 되었다


멕시코에 도착한 대다수 스페인인들은 극소수의 여자가 있기는 했지만, 대다수가 남자들이었고 이들은 여성과의 육체적인 관계에 목이 마른 상태였다.​

스페인인들은 아즈텍 제국을 점령하는 과정에서 여러 원주민 동맹국들로부터 지원 요청을 받았는데 그중에는 스페인인들의 성욕을 해결해 줄 여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가 코르테스 당신을 열렬히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아주시오.

당신에게 기쁨을 드리고 우리가 당신들을 위해 노력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우리의 딸들을 당신들의 아내로 삼고 당신들의 후손을 볼 수 있게 우리의 딸들을 데려왔습니다".


-텔락스칼라의 추장 시코텡가가 코르테즈에게 딸을 바치며

백인과 원주민과의 혼혈 메스티소(조)라고 불렀다.


16세기 말 멕시코에는 백인 남자와 원주민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인구는 2만 5천 명 정도였고, 50년 후 그 수는 40만 명으로 증가했으며, 18세기 말에는 무려 150만 명이 혼혈인이었다고 한다.​

메스티조와 흑인과의 혼혈


혼혈인구의 상당수는 백인 남자와 원주민 여자 간의 혼혈이었지만, 아프리카 지역에서 노예로 데려온 흑인 남자와 원주민 여자의 혼혈도 존재했고, 극소수 사례지만 주로 귀족 출신 원주민 남자와 스페인 귀족 여자 간의 혼혈도 존재했다.

로보(흑인+인디오)여자와 흑인과의 혼혈


아즈텍의 귀족 출신 여자들 중 아즈텍 제국 왕족 출신 여자들은 후한 대접을 받았는데 아즈텍 황제 몬테수마의 딸인 데쿠이츠포트신은 스페인이 아즈텍을 정복한 이후 이자벨이라는 세례명을 얻었고, 코르테즈는 이자벨에게 도시국가 타쿠바의 수입을 그녀가 소유할 수 있게 해주었으며, 알론도 데 그라도라는 스페인 사람과의 결혼까지 이어주었다.


이후 이자벨의 딸들은 스페인의 부유한 귀족들과 혼인하게 되었고, 이들의 후예 중에 스페인으로 건너간 이들은 리나에스 공작, 이브란테스 공작, 미라발레 백작 등 스페인 귀족 작위를 받았다.

그리고 이자벨의 후손들은 여전히 스페인에서 귀족으로 살고 있다고 한다.


멕시코의 모든 아즈텍인들이 스페인에 적대적인 것은 아니었는데, 그들은 아즈텍의 귀족과 전사 계급 출신의 인물들이었다.

아즈텍의 귀족들은 누구보다도 먼저 카톨릭을 받아들인 후 스페인어를 배워 스페인이 통치하기 힘든 지방의 관리직을 차지할 수 있었다.

특히 코르테스가 아즈텍을 점령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틀락스칼라의 인디오들은 자치권의 전임과 스페인 정부로부터 각종 지원을 받았는데, 틀락스칼라의 인디오들은 멕시코가 스페인에서 독립할 때 누구보다도 열렬히 스페인을 위해서 멕시코 독립군과 싸웠다고 한다.

아즈텍 전사들은 아즈텍 제국이 멸망하면서 실업자들로 전락하는데 스페인은 이들 아즈텍 전사 계층에 스페인식 훈련과 무기 사용법을 알려주었고, 이들이 스페인을 도와 전투에서 공을 세우면 진급을 시켜주거나 훈장을 주었으며 각종 부역과 세금을 면제하는 특권을 부여했다.

이러한 혜택 덕분에 아즈텍 전사 계급 출신들은 누구보다도 빨리 스페인에 동화되었는데 이들은 스페인에서 데려온 가축들의 사육과 광산 기술, 상업, 회계, 법률 등을 배웠으며 스페인이 멕시코를 통치하는데 필요한 하급 실무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하지만 대다수 원주민들의 생활은 매우 가혹했는데 아즈텍 제국이란 강력한 국가가 멸망하자, 멕시코에는 권력의 공백기가 찾아왔다.

일부 도시는 스페인 선교사들이 통치의 공백을 메웠지만, 대다수의 도시에는 치안을 담당하는 인원들조차 없는 무법천지였다.

여기에 한 술 더 떠 스페인인들은 치안을 회복시키려는 노력은커녕 스페인 인디오들을 잡아 노예로 부렸고, 스페인에 빌붙은 아즈텍 귀족들조차도 인디오들에게 불에 달굴 쇠로 노예 낙인을 찍어 죽을 때까지 부려먹었다.

또한 도망치다 붙잡힌 불운한 자들은 개들에게 던져지는 아픔을 겪었다.

이러한 만행들은 카를5세가 인디오 보호령을 내렸을 때에야 인디오들은 혹독한 노예생활을 끝낼 수 있었다.

천연두에 걸린 원주민


스페인인들이 원주민에게 가지고 온 것 중 최악은 바로 전염병이었다.

아즈텍 제국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이 스페인 군대에 포위되었을 때 티푸스와 천연두가 퍼졌는데 이후 티푸스와 천연두는 멕시코 전역으로 퍼져 엄청나게 많은 인구가 감소되었다.

이 전염병을 퍼트린 스페인은 적반하장격으로 아즈텍 제국의 신들은 존재하지 않고, 아즈텍인들이 카톨릭을 믿지 않은 것이 역병의 원인이라며 원주민들을 선동했다.

아즈텍인들은 스페인의 침략 후에 수탈과 전염병, 알코올중독, 영아살해, 낙태, 자살이 끊이지 않는 민족이 되어버렸고, 스페인인들이 가지고 온 역병들도 백여 년이 지난 후 사람들이 면역력을 갖추었을 때 사라졌다고 한다.

17세기 들어 사회가 안정되면서 멕시코 내 인디오들은 점점 소멸되고 정체성을 상실해 갔다.

귀족들은 스페인 여자 또는 남자와의 혼혈을 통해 그들의 조상이 가졌던 인디오의 외모를 백인 같은 외모로 변화시켰고, 스페인 왕이 그들에게 주는 작위를 유지하며 멕시코에서 자신들의 지위를 보존하기 위해 치열한 권력 다툼을 벌였다.

한편 코르테스에게 협력한 틀락스칼라 귀족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원주민 혈통을 유지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는데, 스페인은 틀락스칼라의 원주민들이 아즈텍 제국을 함락시키는데 협력한 대가로 무제한의 자치권을 보장해 틀락스칼라 귀족들은 아즈텍 제국 출신 귀족들보다 훨씬 자유로웠어.

원주민 문화가 소멸되는 와중에 틀락스칼라의 귀족들은 스페인 왕에게 원주민 문화를 보호해 달라는 집단 청원서를 내기도 했고, 원주민들에게도 교육의 기회를 확대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원주민들의 삶도 변화되었는데, 사회가 안정되면서 푸에블로(마을)를 중심으로 공동체가 형성되었고, 원주민들은 그들의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 푸에블로의 증서를 작성해 후대에게 물려주었으며, 교회를 통해 마을을 운영해나갔다.

카톨릭교회는 인디오들에게 세례나 결혼, 장례식 같은 행사를 제공해 주었으며, 각 마을의 재산을 대지주들에게 빼앗기지 않게 보호해 주는 역할도 했다.

또한 스페인 국왕이 원주민과 스페인 백인과의 차별 대우를 법적으로 폐지되어 원주민들의 생활 수준도 향상되기 시작했다.

18세기 말~19세기 초 신스페인의 수도 멕시코시티는 인구 13만 7000명으로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


하지만 원주민들의 생활은 다시 혼란스러워지는데 18세기 원주민 인구가 폭증하고 대지주들이 원주민들이 열심히 가꾼 땅을 빼앗자 원주민들은 도시로 몰려왔다.

대지주 아센다도스와 소작농들


도시로 빠져나온 원주민들이 가질 수 있는 직업은 열악한 것뿐이었지만, 원주민들은 이런 직업이라도 서로 하겠다며 나섰고, 도시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1821년 멕시코가 독립을 하게 되었고, 멕시코 정부는 법적으로는 원주민들이 백인 또는 혼혈인들과 동등한 시민이라고 표시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멕시코 정부는 원주민 마을(푸에블로)의 재산을 대지주에게 매각해 버렸고, 원주민은 귀족일지라도 불이익을 받았는데 스페인에 협력한 대가로 자치권을 얻었던 텔락스칼라의 귀족들조차도 원주민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권리를 박탈당했다.


이후 계속해서 멕시코의 수도인 멕시코시티로 사람들은 몰려들었고, 그 결과 멕시코시티는 2000만이 넘는 인구를 자랑하는 대도시가 되었으나 멕시코인들의 삶은 여전히 좋지 않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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