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존스타운 집단자살사건

MeRCuRyNim 2023. 2. 15.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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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사원 집단자살이라고도 불리는 참사로 무려 918명이 동시에 목숨을 잃었다'

1978년 11월 18일


912명의 사람들이 독극물을 마시고 집단자살하는 괴이한 사건이 발생한다.

사망자 중 276명은 어린이였다. ​

사건의 주동자는 머리에 총상을 입은 채로 발견되었다. ​

그의 이름은 짐 존스

이 집단자살 사건이 발생하기 20여년 전...​​


1956년 6월​

짐 존스는 인민 사원(Peoples Temple)이라는 인종 통합의 교회를 세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가는 봉사단체 성격의 종교 지도자로서 출발하였다.


시기가 50년대라는 점을 고려하면, 흑인과 백인을 차별하지 않겠다는 통합의 메세지는 확실히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실제 존스가 자신만의 교회를 생각하게 된 계기도 다른 교회의 흑인 차별 때문이라고 밝혔다.

1966년

교세가 점점 거세지고 있던중, 짐 존스는 인디애나폴리스가 핵참화에 휘말릴 것이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교인들에게 알린다.


계시에 대한 믿음이 확고했던 짐 존스와 교인들은 인민 사원을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캘리포니아로 이전한다.

존스는 사회주의에 심취한 자로서 모두가 공평하게 그리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사회를 꿈꿨다.

따라서 모든 교인들의 재산을 교회에 바치게 하였고, 교인들이 모두 공평하게 나누어 가졌다.​​


존스에 대한 무한한 신뢰로 인해 교회가 완전히 존스의 통제하에 들어간 후, 인민사원 교인들은 존스의 의지에 따라 지역사회의 봉사에 힘을 썼고, 그들에 대한  언론이나 지역사회의 반응은 당연히 호의적이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 존스는 자신을 자주 예수와 같이 신격화했고, 교인들에게 곧 인의 멸망이 오게 될 것이니, 자신을 메시아로 여기고 따를 것을 요구한다.​​


1973년

짐 존스는 캘리포니아의 작은 커뮤니티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미국을 벗어난 자신만의 왕국을 꿈꾼다.​​​


자신만의 왕국으로 선택된 곳은 남미의 가이아나로,
존스는 가이아나 정부로부터 땅을 빌리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교인들 중 일부를 소규모로 이주시키기 시작한다.

하지만 존스 자신은 계속 미국 땅에 머무른다.


1977년

미국의 언론에서 남성 교인과의 변태 성행위와 신도 폭행, 그리고 기적치유의 사기 등의 각종 범죄에 대한 전 신도의 증언이 수면위로 떠 오르려하자 존스는 미국을 떠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폭로기사가 나오기 전 날, 본격적으로 교인들을 이주시키기 시작한다.

언론의 폭로 전에는 가이아나에 이주한 교인의 숫자는 50여명에 불과했지만,


폭로가 임박하자 무려 수 백명이 한번에 가이아나로 이주하게 된다.

존스는 악함이 존재하지 않는 순수한 지상낙원이라며 교인들을 꾀었지만, 교인들이 도착한 곳은 열대우림 이었다.


각종 부대시설이 부족한 것은 당연한 일이고, 교인들은 돼지우리처럼 좁은 곳에서 한데 지내게 된다.

교인들은 오두막에 성별로 나뉘어 수용되었고, 부부인 경우에도 예외없이 나뉘어 수용되었다.


가이아나에 도착한 교인들은 곧 존스 타운 건설에 내몰리게 된다.

정글의 열기와 습기 속에 고된 노동을 11시간 넘게 지속하니 각종 풍토병과 과로에 의한 병으로 시달리게 된다.

거기에다 짐 존스는 거대한 스피커를 설치해서 모든 교인들에게 들리도록 설교를 했다고 하는데, 이 설교는 낮밤을 가리지 않아, 교인들이 잠을 설치게 했다고 한다.​​


일부 존스에 대한 믿음이 확고한 교인들은 존스타운을 지상낙원이라고 여겼지만, 현실의 고된 노동에 지쳐 탈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존스는 탈출하면 원주민들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라며 공갈 및 협박을 하며 이탈을 막았고,


급기야 존스타운 주변을 무장경비로 봉쇄해 자신의 허락 없이는 외부로 출입하는 것이 불가능하도록 만든다.


1978년 11월 17일

'사소한 시작이 비극을 낳게 되다'

미국에 남아있는 교인들 가족의 요청과 존스타운에
관한 불길한 루머가 들려오기 시작하자,


당시 캘리포니아의 하원의원이었던 리오 라이언이 직접 조사차 존스타운을 방문하기로 결정한다.


하원의원은 NBC 방송국 직원과 교인들 가족 일부를 대동하고 존스타운을 방문했는데,


그곳의 교인들이 리오 라이언을 웃음으로 맞이하고, 즐거운 것 처럼 행동을 하였지만, 그는 뭔가 심상치 않는 분위기가 흐른다는 것을 감지한다. ​​


그리고 실제 교인들 일부가 감시망을 피해 NBC 직원에게 쪽지를 통해 존스 타운을 나가고 싶다는 의향을 전한다.

1978년 11월 18일

아침이 밝자 리오 라이언의원은 탈출을 희망하는 교인들과 함께 미국으로 귀환하려 했지만, 존스의 보복을 두려워 교인들 중 소수 만이 탈출에 응한다.

라이언의원과 수행단 그리고 교인들은 트럭에 올라타 떠날 준비를 한 뒤 이내 존스타운을 떠나 공항으로 향한다.​​


일행이 탄 트럭이 공항에 도착했지만, 비행기의 이륙 준비가 덜 되어 바로 떠날 수가 없었다.​​


공항에 도착한 지 얼마쯤 지났을까... 트랙터를 타고 나타난 존스타운 교인들에 의해 의원 일행은 기관총 세례를 받게 되고, 대부분이 즉사하게 된다.​​


한편 존스타운의 짐 존스는 교인들을 모두 한데로 모이게 한다.

존스는 교인들을 향해 설교를 했는데, 그 모습은 마치 공포감에 휩싸여 안절부절 못하는 것 처럼 보였다고 한다.


설교를 하던 존스는 일부 교인들이 떠난 것에 화가 났고, 라이언 의원 일행을 공격했다고 시인한다.

또한 존스는 이번 라이언 의원 일행에 대한 행위 때문에 존스타운은 안전하지 못 할 것이라고 교인들에게 이야기하며,​​


곧 미국 정부의 대규모 공습이 존스타운에 가해질 것이라고 교인들에 경고한다.

"놈들이 낙하산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오면,
죄없는 아이들까지 죽일 것이다!"



존스는 그들로 부터의 죽음을 해결할 유일한 방법은 '자살'이라는 혁명적인 행동이라고 하며, 교인 전체에게 집단 자살을 요구하게 된다.

한 여신도가 다른 방법은 없겠느냐고 존스에게 물었으나, 다른 신도들의 항의에 의해 묵살된다.

곧 라이언 의원이 확실히 죽었다는 전갈이 전해오자, 존스는 더욱 급박해졌다.

"놈들이 이 땅에 오게 되면 우리 아이들을 고문할 것이고, 우리 사람들을 고문할 것이고, 우리 노인들을 고문할 것이다.
우린 이걸 감당할 수 없다"
며 재차 자살을 권유한다.


존스는 포도맛 쥬스에 청산가리와 발륨을 섞어 신도들에게 나눠준 뒤 서둘러 마시게 한다.


유아와 아이들부터 먼저 마시게 했는데, 마실 수 없는 경우에는 주사기를 통해 입에 뿌렸다고 하며, 아이에게 주고 남은 음료수는 엄마가 마셨다고 한다.​

계속해서 독이든 음료가 나누어졌고, 많은 인원이 함께 생활했기에 음로가 나눠지는 동안 먼저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일부 마시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총부리를 겨누며 자살행위를 강요했으며, 그들 각자가 생을 마감하기까지의 시간은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1978년 11월 18일

정글이나 존스타운에 숨어있던 소수의 인원만은 살아남았지만, 912명이 독극물이 포함된 음료를 마시고 죽었으며, 그 중 276명은 어린이였다.

공항에서 사망한 라이언의원 일행을 포함하면 총 희생자는 918명.

흔히 인민사원 집단 자살이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희생자 중 276명은 어린이였으므로 존스타운 학살이 더 적절하지 않냐는 반론도 있다. (어린이와 유아는 자살이 불가하기 때문이다)

주동자 짐 존스는 머리에 총을 맞은 채 사망한 모습으로 발견되었는데, 내부자의 소행인지 아니면 자살인지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존스타운 참사는 미국 역사상 단일 사건으로 자연 재해를 제외한 가장 많은 사망자를 기록한 참사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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