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유명인

한 개인의 힘으로 저출산을 극복한 나라

MeRCuRyNim 2023. 2. 22.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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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는 저출산에 맞서 매우 특이한 방법을 쓰고 있는데, 이 사례는 현대 사회에서 거의 전무후무한, 앞으로 다시는 보기 힘든 사례다.

또한 종교의 힘을 보여준 사례이자, 국가가 아닌 개인이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발휘해 한 나라의 인구 구조를 바꾼 사례이다.​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 중 하나인 조지아는 역사적으로 여러 제국들의 통치를 받았고, 최후에는 소련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이 당시 조지아 지역의 인구는 약 300만 명이었는데 소련 해체 직전 545만 명 정도로 크게 증가했다.

하지만 소련이 해체되면서 소련 체제에 종속되어 있던 조지아의 경제는 혼란에 빠졌고, 그것은 엄청난 비극이 되었다.

조지아 내부의 소수 민족들이 거주하던 압하지아와 남오세티아에서는 분리주의 반란이 일어났고, 공화국 내부에서도 군부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내전이 발생하였다.

이 과정에서 마피아 두목들이 장관직을 차지하는 등 끔찍한 혼란이 일어났다.​


위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소련 체제의 붕괴와 이후의 혼란은 조지아 경제에 어마어마한 타격을 입혔다.

불과 5년 만에 조지아의 실질적 경제 규모는 80%가 줄어들어 기존의 20% 밖에 안되는 규모로 추락했다.​


나라의 경제 상황이 곤두박질 쳐버리니 인구 통계가 정상적일 리가 없었다.

조지아의 시민들은 더 나은 곳을 찾아 떠나기 시작했고, 경제적 부담은 사람들에게 육아에 대한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러한 이유 등으로 낙태율이 늘어나며 출산율도 2.3명에서 1.5명대까지 떨어졌는데, 출산율과는 반대로 국가의 사망률은 더 높아져 막대한 이민을 제외하더라도 순 인구의 감소가 일어났다.

오늘날 조지아의 인구는 370만 명으로 30년 전에 비해서 3분의 1이나 줄어들어버렸다.


이렇게 위기에 빠진 조지아의 인구 상태를 뒤집어버린 인물이 있는데, 바로 일리아 2세, 조지아 정교회의 총 대주교다.

2007년, 일리아 총 대주교는 파격적인 선언을 하게 되는데, 그는 앞으로 한 부부 사이에서 태어날 셋째나 그 이상의 아이들에게 자신이 직접 세례를 해주고 그들의 대부가 되겠다고 선언하였다.


이런 선언이 종교인이 아닌 사람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을 수도 있지만, 조지아의 사회 특성을 생각한다면 이는 어마어마한 선언이었다.

조지아인들은 자국이 에티오피아, 아르메니아와 함께 인류 사상 최초의 기독교 국가 중 하나라는 것에 매우 큰 자부심을 느낀다.

이슬람과 소련의 지배하에서도 조지아의 기독교는 살아남았고, 조지아의 민족성을 끝까지 수호하였다.

그러한 연유로 오늘날 조지아에서 사람들이 제일 신뢰하는 주요 기관은 조지아 정교회이며, 조지아 정교회는 조지아 인구의 84%를 신자로 가지고 있으며 전체 인구의 대다수가 신뢰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중심에 일리아 2세가 있다.


1977년 취임한 일리아 총 대주교는 소련의 탄압과 내부 부패로 쇠락하고 있던 교회를 개혁하면서 성공적으로 재부흥시켰고, 소련 해체 국면 당시에도 평화적인 반소련, 반공산화 운동을 주도했다.

독립 이후 그는 내전에서 평화를 이룩하기 위해 힘을 썼고, 또한 조지아의 문화재를 수호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힘든 시기를 보내는 조지아인들의 영적인 지주가 되었다.

이런 이력 덕분에 2013년에 발표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조지아인의 94%가 그를 호의적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위상을 지닌 종교 지도자가 직접 세례를 해주고, 대부가 되어 준다는 것은 당연히 조지아인들에게 엄청난 영광으로 여겨졌으며, 특히
정교회 문화권에서 대부가 가진 상징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이 시기의 조지아는 접경국 러시아와 영토 분쟁을 겪고 있었는데, 실제로 이 다음 해에 양국은 조그마한 전쟁을 벌였고, 조지아는 패배해 버렸다.

그런데 이를 계기로 조지아 국민들의 민족주의, 애국주의 정서를 자극하여 출생주의 운동에 큰 영향을 주게 되었다.

조지아 정부 또한 이에 호응하며 정부 정책을 통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데, 2013년에는 유급 육아휴직 기간을 126일에서 183일로, 무급 육아휴직 기간은 477일에서 730일로 대폭 연장되었다.

출산 장려금은 $250에서 $400으로 늘어났고, 넷째 아이에 대한 장려금은 $800까지 증가했다.(조지아처럼 경제 상황이 좋지 않던 시기에는 매우 큰돈이었다)

2014년에는 인구가 적은 지역에 거주하는 다자녀 가정들에 연간 $850을 지원하는 정책도 통과되었다.​


이렇듯 영향력 있는 개인의 노력, 국가의 지원, 시민들의 애국심이 한데 뭉쳐 곧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2007년 1.5명이던 조지아의 출산율은 2.3명까지 반등했고, 출생아 숫자 또한 4만 명대 후반에서 6만 5천 명대까지 폭증했다.

현재 출산율은 약 2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출생아 숫자는 최근 다시 4만 명대로 진입했으나, 이는 코로나 팬데믹과 가임기 여성의 감소를 감안하면 여전히 낙관적으로 볼 수 있는 수치이다.

일리아 2세는 자신이 약속한 공약을 이행하려고 노력했다.

비록 이미 70대 후반이었기에 모든 아기들을 축복해 주지는 못했으나,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려 꾸준한 모습을 보였다.

2007년 이후 태어난 셋째 이상의 아이들의 약 3분의 1이 대주교의 축복을 받았고, 2023년 현재 일리아 총 대주교의 대자들은 4만 명이 넘어갈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조지아 전역에서 다른 사제들도 대규모 합동 세례식을 진행했다.

그렇다면 과연 조지아의 인구 반등은 일리아 2세의 영향력 때문일까?


조지아 정교회의 영향에 회의적인 입장인 ISET 연구소는 그 근거로 일리아 2세의 영향력을 벗어난 타 종교 신자들과 무종교인들의 출산율 증가를 증거로 제출하였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출산 데이터를 세부적으로 분석한다면, 정교회 신자들과 비신자들의 출산 경향에는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ISET는 이 결과에 대해 두 가지 이론을 발표하였다.

하나는 비신자들이 정교회 신자들의 출산 증가와 이에 대한 매체들의 보도에 자극받아서 역시나 아이를 많이 가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연구소는 비신자들의 상당수가 자신들만의 공동체에 거주하고 조지아어에 능숙하지 못한 점을 들며 이 가설을 자체적으로 비판했다.

ISET는 그보다는 경제적인 원인이 크다고 분석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조지아의 경제 성장률과 국민들의 소득 수준이 크게 개선되었고, 비신자들의 공동체에서 그 폭이 더 컸다는 주장이다.

즉, 조지아의 저출산 극복은 경제적 요인이 훨씬 컸으며 교회의 영향력은 거의 없었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이 주장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두 가지 있었는데,  조지아의 경제 상황은 2008년 이후 다시 나빠졌고, 해당 연구의 샘플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와의 전쟁과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는 조지아에 큰 영향을 끼쳤다.

2007년 13%였던 실업률은 2009년 21%까지 치솟았고, 이후 2018년이 되어서야 다시 13% 밑으로 내려왔다.

경제성장률도 2000년대 중반에는 약 10%였으나 2010년대 중반에는 3%대로 크게 하락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조지아의 출생아는 오히려 경제적 어려움이 절정에 달한 2008년~2009년에 크게 늘어났고, 이후에도 그 수준을 유지했다.

이는 ISET가 제기한 경제적 여건 개선이 출산율 증가에 영향을 끼쳤다는 이론에 정반대되는 결과이다.

조지아의 출산율은 오히려 경제 상황이 악화되었을 때 상승했으며, 경제적 요인과 상관없이 이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인구 전문가 라이먼 스톤 박사는 또한 ISET의 표본이 너무 작으며 조지아의 인구 구성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는 종교별로 심층적인 분석을 하기에는 데이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고, 대신 지역별 종교 구성 데이터를 이용해서 추측하기로 했다.

위의 데이터는 2007년을 100 기준으로 정한 뒤 이후 조지아의 출생 데이터를 표시한 그래프이다.

스톤 박사는 정교회 비신자들이 40%가 넘어가는 지역, 비신자 비중이 10~39%인 지역, 비신자가 10% 미만인 지역, 그리고 (94%가 정교회 신자인) 수도 트빌리시 네 가지로 분류했다.

이전부터 출산율이 높았던, 그래서 상대적 증가량이 낮았던 트빌리시를 제외한다면, 2007년 이후 정교회 신자 비중이 높을수록 출산율의 증가 폭이 커졌다.

그리고 비신자 비중이 높은 지역들의 출생률은 2013년, 즉 정부의 지원책이 통과된 이후, 정교회 신자 비중이 높은 지역들과 비슷해졌다.

스톤 박사는 정교회의 영향력이 컸다는 사실을 다음을 통해서 증명했다.


가장 중요한 지표인 신생아들의 구성을 위의 그래프에서 살펴보면,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신생아들의 숫자는 첫째와 둘째, 셋째 이상 모두에서 크게 증가했다.

그러나 2010년부터 첫째들의 숫자는 서서히 감소했고, 둘째들의 숫자는 대체로 현황을 유지했으며, 셋째나 그 이상의 숫자는 꾸준히 점진적으로 증가했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첫째와 둘째 출산이 크게 늘어난 것도 셋째를 갖고 싶어 하는 부모들의 출산이 원인일 수도 있다.


또 다른 중요한 지표를 살펴보며, 바로 기혼자들과 미혼자들의 사이에서의 출생 지표이다.

조지아 정교회도 다른 모든 아브라함계 종교들처럼 결혼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일리아 2세도 부부 사이의 아이들에게만 유아 세례를 해주는 상황이다.

그래프가 보여주듯, 2007년 이후 기혼자들 사이에서 태어나는 신생아들의 숫자는 무려 두 배나 증가한 반면, 미혼자들의 출생아 숫자는 오히려 소폭 하락했다.

조지아의 출생아 증가는 전부 기혼자들이 견인한 것이다.

이 지표 또한 조지아의 출생아 증가가 일리아 2세의 개입 덕분이라는 주장에 힘을 크게 실어준다.


정부의 금전적 지원의 효과는 어떠한 영향력을 발휘했을까?

첫째와 둘째 자녀 출생 숫자는 줄어들었지만, 셋째와 넷째, 그 이상의 출생은 계속 증가했다.

그러나 그 효과는 일리아 대주교의 세례식 효과보다는 낮았고, 세례식에 비해 돈이 들어가는 만큼 사회적 부담도 훨씬 더 컸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역시나 조지아의 저출산 극복에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며, 특히 위의 결과에서 볼 수 있듯이 정교회 신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다.


조지아의 이런 특이한 저출산 극복은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냈으나, 여러 가지 면에서 그 한계가 명확하다.

일리아 2세라는 강력한 개인에 의존하기 때문에, 올해 90세인 총 대주교가 조만간 사망한다면 향후에 어떠한 변화가 생길지 모를 일이다.

또한 십수 년간 이 이벤트가 지속되면서 국민적 관심과 세례를 대한 간절한 의지도 많이 사그라들었다.

조지아의 모델은 타국에서 모방하기도 힘들다.

세계에서 조지아처럼 종교성이 강하며 종교적으로 통합되어 있는 나라는 많지 않고, 그 국가들 중에서도 일리아 2세처럼 전 국민의 존경을 받는 종교 지도자는 많지 않다.

그렇기에 조지아식 해법은 조지아에만 성공적인 정책 사례로서, 타 국가에서 조지아처럼 정책을 펼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물론 이런 문제들이 있다고 해서 당장의 성과를 부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일리아 2세는 자신이 가진 막대한 사회적 영향력을 이용하여 일종의 기적을 일으켜 국가가 존속할 수 있는 시간을 최소 10년을 늘여주었다.

다른 국가들이 막대한 제정 지원으로 저출산에 필사적으로 맞서 싸우는 동안, 조지아는 종교의 힘, 개인의 힘으로 엄청난 규모의 출산율 반등을 이뤄낸 것이다.

이는 역사에 기록될 가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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