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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타고의 한니발 - 전쟁의 서막

MeRCuRyNim 2022. 12. 27.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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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니발 바르카는 카르타고라는 도시국가 출신이다.

카르타고가 단순한 도시국가가 아니었으며, 카르타고가 통치하고 있는 국가는 작은 제국의 크기를 넘어선 수준이었다.

위의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아주 큰 나라였다.

다만 지금과 같은 국가형태가 아니었고, 동등한 행정 통치가 아니라 도시 카르타고가 맹주 역할을 하고 나머지 지역은 카르타고의 통치하에 있었다.

한니발이 태어났을 당시의 카르타고는 분위기가 매우 좋지 않았다.

이 시기의 카르타고는 로마에 패배한 직후였고, 그 댓가로 시칠리아와 샤르데냐, 코르시카를 연달아 빼앗겼기 때문이었다.


위의 그림의 동그라미친 부분이 빼앗긴 영토인데, 위에서 부터 순서대로 코르시카, 샤르데냐, 시칠리아가 로마에게로 넘어가게 되었다.

이 영토들이 얼마나 중요한 지역인가 하면, 샤르데냐는 곡창지대로 유명했으며, 시칠리아는 카르타고와 로마만큼 오래된 도시국가들이 밀집해 있을 정도의 번영한 지역이었다.

그리고 코르시카섬의 경우 위쪽의 북이탈리아지역에 있는 갈리아인들과의 교역로를 빼앗기는 것이라 손해가 막대한 것이었다.

이렇게 전쟁에서 패배하고, 그 대가로써 영토를 많이 빼앗기게 되자 카르타고의 분위기는 상당히 암울했으며, 그리고 그 분위기의 중심엔 한니발의 아버지인 하밀카르가 있었는데, 그는 전쟁 막바지에 로마군을 상대한 카르타고 육군 총사령관이었다.

하밀카르는 매우 유능한 장군으로 시칠리아섬에 주둔한 카르타고 육군을 맡은 뒤 로마군을 상대로 한번도 지지않았을 정도의 실력자였다.

하밀카르 군대를 이길 수 없다고 본 로마군은 해전으로 카르타고와 승부를 보기로 결정했고, 곧이어 벌어진 해전에서 카르타고의 해군을 전멸시켰다.

그러자 육지에 주둔해 있던 하밀카르도 어쩔 수 없이 평화조약을 맺고 시칠리아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하밀카르


로마군과의 전쟁에서 패한 하밀카르는 로마에 대한 적개심이 굉장했고, 맏아들 한니발을 바알 신전으로 데리고 가서 맹세를 시킨다.


그 맹세의 주된 내용은 평생 로마를 적으로 삼겠노라하는 것이었다.

하밀카르의 가문은 카르타고의 대명문가였기에 로마로써도 가볍게 볼 만한 일이 아니었다.

즉 지금으로 치면 전직 국가원수 역임한 사람에 (하밀카르가 한번 선출되었었다) 군대의 제 일인자이자 정계의 가장 영향력이 큰 가문의 수장이 그 사람의 장손에게 어느 나라에 대해 평생 적대할 것을 맹세시킨 것임이었다.

맹세 이후 하밀카르는 가족을 데리고 로마와의 전쟁후 전력을 재정비하던 군대를 이끌고 스페인으로 건너갔다.

스페인에서 7년동안 정복전쟁을 치른 하밀카르는 막강한 로마 상대로도 패배의 전적이 없던 사나이라 스페인 원주민 상대론 가히 무적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명장 하밀카르도 전투에서 전사하였고, 뒤를 이어 하밀카르의 동생은 7년동안 열심히 카르타고를 통치 했지만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그리고 하밀카르의 아들인 한니발이 그 뒤를 잇게 된다.


이때 한니발 나이는 26세, 스페인의 모든 군대와 도시를 거느리는 권력을 갖게 된 것이다.

고대에는 권력의 세습이 당연한 것이라 받아들여졌었고, 한니발의 군대 내에서의 성향이 이버지인 하밀카르와 비슷해 군인들이 한니발이 지도자가 되는 것을 반겼다고 한다.

이제 막 스페인의 최고 통치자가 된 한니발에겐 골치 아픈 문제가 있었다.

스페인 내의 사군툼이라는 도시가 반기를 든 것이다.

그 연유는,


한니발의 숙부가 스페인을 통치했을때 로마와 강화조약을 맺은 바가 있었다.

그 조약에서 위 지도의 에보로강 남쪽은 카르타고가 모두퉁치하고, 북쪽은 로마가 모두 통치 하기로 한 조약이었다.

그런데 에보로강 밑에 위치한
사군툼(Saguntum)이라는 도시가 카르타고 보다는 상대적으로 강력했던 로마와 조약을 맺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로마와 카르타고는 에보로강을 경계로 영토를 다스리겠다고 조약을 맺었기 때문에 사군툼이 로마와 조약을 맺겠다고 해도 로마로서는 쉽게 동의할 만한 문제는 아니었다.

그런데 로마는 조약을 무시해 버리고 사군툼과 동맹을 맺은 후 카르타고측, 즉 스페인을 통치하고 있는 한니발이 속한 가문에게

"사군툼을 건들면 가만두지 않겠다"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이런 협박이 한니발의 숙부에게 큰 두려움으로 다가왔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전전긍긍하다가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한니발이 그 뒤를 이어받은 것이었다.

한니발은 스페인의 통치권을 이어받은 후 군대를 일년간 재정비 했고 만27세가 되었을때 사군톰을 포위했다.

이에 로마가 한니발에게 경고를 했지만 한니발 모든 경고를 모조리 무시했다.

제대로 화가난 로마는 원로원 의원들을 파견했다. (원로원 의원은 현대에서 국회의원의 위치라 할 수 있는데 지금의 국회보다 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즉 로마의 통치권력자들 일부가 한니발을 방문한 것이었다)

로마 원로원 의원의 동상


로마 고위층의 방문이었기에 군대를 지휘중인 한니발도 직접 만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한니발은 이들과 만난 자리에서 토론이고 커녕 그들의 말을 모두 무시해 버리고, 부하들에게 어떤 일을 당해도 자신은 책임지지 않을 것이라며 협박했다.

로마의 원로원들은 새파랗게 젊은 통치자의 태도가
가관이었고, 말이 통할 것 같지 않아 이들은 로마로 귀국하는 대신 그대로 카르타고의 본국에 방문을 한다.


카르타고 본국에 간 원로원 의원들, 그리고 그 원로원들의 수장인 퀸투스 파비우스는 카르타고의 원로원 의원들에게 한니발이 사군툼에서 철수하지 않으면 전쟁을 선포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그런데 카르타고 원로원은 협박을 시큰둥하게 받아들였고, 이런 예상 밖의 반응에 깜짝 놀란 파비우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다음과 같이 말했다.

파비우스: "당신들에게 두가지 선택권을 주겠소. 전쟁이요 평화요?"

카르타고 원로원: "당신이 선택하시오"

파비우스: "그런 난 전쟁을 선택하겠소"

카르타고 원로원: (이구동성으로 외치며)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지"

이로써 카르타고와 로마의 전쟁은 공식화 되었고 이로써 2차 포에니 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한니발은 곧바로 사군툼을 함락한 뒤 그 주민을 몽땅 노예로 팔아버리고 도시를 파괴해 버렸다.

분노한 로마는 스페인을 공격할 준비를 하였고, 이로써 전쟁의 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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