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하고 호탕한 우리의 조상들

진정한 야인 김시습

MeRCuRyNim 2023. 6. 18. 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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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습

 

헛되이 백이숙제를 굶겨


고사리 캐게 하는가


-진정한 야인 김시습


쾌라는 한자는 거리낌이 없다는 뜻도 있는데 세상을 미치광이처럼 떠돌면서 거침없이 살아간 사람들이 다수 존재한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불의를 질타하는 그들에게서 때때로 우리는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그들이 해냈기에 통쾌함을 느낀다.


동봉(東峰) 김시습(金時習)은 어릴 때부터 영민하고 시를 잘 지어 명성을 떨쳤다. 

 

수양대군(세조) : "내가 왕이 될 상인가?"

 

세조가 단종의 보위를 찬탈하자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떠돌면서 많은 일화를 남겼는데 그는 세속에 구애받지 않고 호쾌하게 그리고 미친 듯이 시를 읊고 방랑하며 한 세상을 희롱했다. 

 

중이 되었으나 불법은 받들지 않으니 사람들이 그를 미친 중이라고 했다. 

 

저잣거리를 지나다가 응시(凝視)하느라 돌아갈 것도 잊고 한곳에서 여러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길거리에서 대소변을 보면서도 사람들의 눈을 꺼리지 않으니 아이들이 욕하고 비웃으면서 기와나 자갈을 던져 쫓아버리기도 했다.


김시습은 1435년(세종 17) 한양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이웃집에 사는 예문관수찬 이계전(李季甸)에게 《중용中庸》과 《대학大學》을 배웠다. 

 

천자문을 떼기도 바쁜 나이에 《중용》과 《대학》을 배웠으니 그가 천재 소년으로 명성을 떨쳤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계전에게 《중용》과 《대학》을 배운 뒤에는 성균관 대사성 김반(金泮)에게서 《맹자孟子》 《시경詩經》《서경書經>을 배우고, 겸사성(兼司成) 윤상(尹祥)에게 《주역周易》과 《예기禮記》를 배웠는데 청년이 되기 전에 조선 시대 유학자들이 공부하는 책들을 대부분 섭렵한 것이다.


비는 안 오는데 우렛소리는 어느 곳에서 울리는가

無雨雷聲何處動

 

누런 구름이 조각조각 사방으로 흩어지네
黃雲片片四方分


위는 김시습이 세 살 때 유모가 맷돌 가는 것을 보고 읊었다는 시로서  그의 천재성은 이렇듯 어릴 때부터 확연하게 드러났다.

 

청령포도, 김시습은 10대에는 학업, 20대에는 주유천하 30대에는 정사수도(靜思修道), 40대에는 현실에 온몸으로 항거하다가 50대에 이르러서는 초연히 낡은 허울을 벗어버리고 정처 없이 떠돌아다닌 김시습은 진정한 야인이다.

 

여덟 달에 남의 말을 알아듣고

八朔解他語

 

세돌에 능히 글을 지었다
三朞能綴文


위는 김시습이 자신에 대하여 쓴 기록이다.

 

그는 자신의 학문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스물두 살 때 계유정난이 일어나 김종서와 황보인이 권람과 한명회 일파에게 살해되고, 1년 뒤 세조가 단종의 보위를 찬탈하자 그에 실망하여 광인처럼 전국을 떠돌면서 기행과 파행을 일삼았다. 

 

사람들이 그를 손가락질하고 광인이라고 비웃었으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 번은 김시습이 밖으로 떠돌면서 집안을 돌보지 않자 어떤 자가 그 틈을 노려 종과 전택을 빼앗았다. 

 

하지만 김시습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그자가 하는 대로 잠자코 있다가 어느 날 빼앗아 간 것을 돌려달라고 청했다. 

 

재산과 종을 빼앗은 자는 미치광이 같은 김시습에게 돌려주고 싶지 않아 하자 김시습은 이렇게 말했다. 

 

"이놈아, 네가 내 재산을 가져가고 멀쩡할 것 같으냐?"


김시습은 자신의 재산을 찾기 위해 재판을 걸어 송사가 벌어졌고, 마침내 좌충우돌하면서 시끄럽게 떠들어댄 끝에 송사에서 승리했지만, 승소한 문서를 가지고 밖으로 나온 김시습은 앙천광소를 터뜨린 뒤 관가의 문서를 찢어버렸다. 

 

기껏 재판을 하여 승소하자 문서를 찢어 재산을 빼앗은 자를 희롱한 것이다.

 

선전기 형조판서, 좌참찬, 좌찬성 등을 역임한 문신 서거정


하루는 세조 때의 명신 서거정이 김시습을 찾아와 강태공이 낚시를 하는 그림에 글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비바람이 쓸쓸하게 강가의 낚시터에 부니

風雨蕭蕭拂釣磯


위수의 물고기와 새들이 기심을 잊는구나

渭川魚鳥識忘機


어찌하여 늘그막에 응양장이 되어

如何老作鷹揚將


헛되이 백이숙제를 굶겨 고사리 캐게 하는가
空使夷齊餓采薇

서거정(徐居正)은 김시습의 시를 몇 번이나 되풀이하여 읽고 탄식했는데 이 시는 뒤늦게 수양대군 세조의 신하가 된 서거정을 비판한 것이었다.


"자네의 시는 바로 나의 죄안(罪案, 범죄 사실을 적은 기록)일세."

 

라고 말하며 서거정은 김시습의 시를 가지고 쓸쓸하게 돌아갔다.


수양대군의 단종 보위 찬탈은 많은 반발을 불러왔는데 성삼문 등 사육신은 단종 복위 운동을 하다가 비참하게 처형되었으며 김시습은 그들이 처형되었다는 말을 듣고 시신을 수습하여 안장하였다. 

 

서슬 퍼런 세조의 눈치를 보느라 아무도 시신을 수습하지 않을 때 김시습은 거리낌 없이 사육신의 시신을 묻어준 것인데 지금까지 노량진에 사육신의 무덤이 남아 있는 것은 김시습의 덕분이다. 

 

권력자의 보위 찬탈과 충신들의 비참한 죽음은 김시습의 정신을 더욱 황폐하게 했다.

 

굴원屈原의 <이소경( 離騷經)>


김시습은 달 밝은 밤이면 어린 사미승을 시켜 굴원屈原의 <이소경(離騷經)>을 읊게 하고 눈물을 흘리며 옷깃을 적셨다.


나는 이미 아름다운 성품이 가득하고

紛吾既有此內美兮


그 위에 훌륭한 재능을 갖추었네

又重之以脩能


강리(강리과의 홍조류로, 흐트러진 머리 모양)와 벽지(여러해살이풀)를 몸에 걸쳐 입고

江離與辟芷


가을 난초를 꿰어서 허리에 찬다

紉秋蘭以爲佩


흐르는 물은 장차 이르지 못할 것 같네

汨余若將不及兮


세월이 나를 기다려주지 않을까 두려워

恐年歲之不吾與


아침에는 목란에서 떨어지는 이슬을 마시고

朝飲木蘭之墜露兮

 

저녁에는 가을 국화의 지는 꽃잎을 먹었네

夕餐秋菊之落英

 

세월은 쉬지 않고 흘러

日月忽其不淹兮


봄과 가을이 교대로 바뀌고

春與秋其代序


초목이 시들어 떨어지니

惟草木之零落兮


임을 늦게 만날까 봐 두려워진다

恐美人之遲暮

<이소경>은 초나라 시인 굴원이 초 왕에게 직간을 올렸으나 용납하지 않자 강남에서 산발을 하고 미치광이처럼 떠돌아다니다가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하기 전에 지은 장편 서사시라 강직한 사대부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김시습이 영의정의 행차를 비난한 일화는 당시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영의정 정창손의 상상화


하루는 영의정 정창손이 저자를 지나는 모습이 김시습의 눈에 띄었다.


"저놈을 멈추게 하라."


김시습이 큰 소리로 외쳤다. 

 

이러한 행동을 한 이유는 사육신을 고발한 김질의 장인 정창손이 세조 치하에서 높은 벼슬을 누리는 것이 미웠기 때문이 정창손은 못 들은 체하고 가버렸다.

 

김시습은 환속하기 전에 산사를 떠돌며 스님 노릇을 했으며 설잠(雪岑)이라는 법호도 있다. 그는 키가 작고 뚱뚱한 편이었으며, 성격이 괴팍하고 날카로워 광인처럼 보였다고 한다. <이 잡는 노승>, 조영석 작


김시습은 환속하기 전에 절을 떠돌았는데 그때 모든 중들이 그를 추대하여 신사(師)로 떠받들면서 복종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제자들이 정중하게 청했다.


“제자들이 대사님을 오랫동안 모셨는데 한 번 가르치는 것을 아끼시니 대사님의 청정법안(清淨眼, 고상한 사상)을 끝내 누구에게 전하려 하십니까? 

중생이 방향을 모르니 금비(金箆, 금으로 된 칼)로 긁어주시기 바랍니다."

 

"좋다."

 


김시습이 허락하자 중들은 크게 기뻐하면서 법연을 열었고, 김시습이 가사를 입고 가부좌를 하자 중들이 합장하고 무릎을 꿇고 앉아 경청할 준비를 했다.


"소 한 마리를 끌고 와야 한다."


김시습이 말하자 중들은 무엇에 쓸지 몰랐으나 소를 끌어다 뜰 밑에 매어두었다.


"꼴을 가져와서 소 뒤에 두라.”


중들은 어리둥절했으나 시키는 대로 풀을 베어다가 소 뒤에 놓았다.


“너희가 법을 듣고자 하는 것이 이와 같다."


김시습이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김시습은 꼴이 뒤에 있는데도 앞에서 찾는 소를 중들에 비유하여 중 들이 엉뚱한 곳에서 도를 찾는다고 일갈한 것이다. 

 

중들이 부끄러워서 모두 물러가고 말았다.

 


노사신은 집현전학자 출신으로, 많은 저서를 집필하고 편찬했을 뿐 아니라 영의정을 지낸 인물이다.


승려 조우가 노사신(盧思愼)에게 <장자(莊子)>를 배운다는 말을 듣고 김시습이 모른 체하고 들어가 큰 소리로 야유했다.


"조우가 노사신에게 배우니 사람이 되겠는가?" 

 

김시습의 말에 조우와 노사신의 얼굴이 붉어졌고, 조우가 감히재상을 비난한다고 김시습에게 달려들었으나 사람들이 말리는 틈에 김시습은 호탕하게 웃고 나서 줄행랑을 쳤다. 

 

조우가 훗날 김시습의 명성을 듣고 찾아가니 김시습이 그를 반갑게 맞이하고 손수 밥을 해주었다. 

 

그런데 조우가 밥숟가락을 뜨려고 하자 김시습은 부채로 먼지를 일으켜 밥을 먹지 못하게 했다.


“밥을 해주고 먹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조우가 불만이 가득하여 물었다.


"노사신에게 배워서 그렇다."


김시습이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는데 세조의 총애를 받는 노사신에게 아부하는 조우가 미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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