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 양

WORLD WAR(1부)-세계대전의 시작

MeRCuRyNim 2023. 4. 24.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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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전쟁터의 한복판

그리고 독일군의 한 참호.

이 참호 속으로 가스탄이 들어온다.

가스다!! 서둘러 방독면을 써!!!

모두가 황급히 방독면을 쓰는 와중에 한 젊은 병사는 자신의 수염 때문에 방독면을 제대로 착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가스탄에는 가스가 별로 들어있지 않았고 금방 꺼졌버렸다.

운 좋게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잠시나마 안도하는 청년.

그는 전투가 끝난 뒤 참호 안에서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했던 수염을 깎는다.

인중에 있는 수염은 놔둔 채로.

음..? 어디서 많이 본모습인데..?

이곳은 오스트리아의 빈.

25살의 청년 아돌프 히틀러는 부모마저 세상을 떠나버린 가난하고 외로운 화가 지망생이었다.

하루하루 생계가 막막했던 히틀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마을을 거닐며 헐값에 자신의 그림을 판매하는 일뿐이었다.

1914년 6월,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부부가 사라예보를 방문하는 도중 암살당해 버린다.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땅 일부를 세르비아에 반환시키려 했던 대세르비아주의자들의 짓이었다.

그로부터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그리고 각 나라에 우호적이었던 강대국들도 전쟁에 참여하면서 전쟁의 규모는 엄청나게 커지게 된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가 세력을 합해 연합국을 이루었고
오스트리아, 독일, 오스만제국은 동맹국을 형성했다.

이로써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된 것이다.

한편 반유대주의자였던 히틀러는 오스트리아군의 입대를 거부하고 있었다.

다문화국가인 조국을 위해 싸울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순수혈통의 국가로 생각하던 독일로 관심을 돌렸고, 결국 독일군으로 입대하게 된다.

마침 독일정부는 병력확보를 위해 지원자 대부분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히틀러는 1914년 8월, 한 달간 독일군 이등병으로 훈련을 받는다.

어느 순간 독일군의 훈련체계는 히틀러를 충성스러운 독일군으로 바꿔버렸다.

히틀러가 속한 독일군 150만 명이 프랑스 국경으로 진격하였다.

1차 세계대전은 본격적인 기계화 전쟁이었다.

선진화된 무기개발은 전투를 학살로 바꿔버렸는데
시간당 230명, 매 15초마다 한 명씩 전사자가 발생하였다.

참호를 한 줄로 이어놓으면 그 길이가 약 4만 킬로미터나 될 정도였는데, 이는 지구 한 바퀴를 두를 수 있는 길이었다.

독일군은 중립국인 벨기에를 빠르게 통과했지만, 프랑스 북부에서 연합국과 치열한 참호전을 벌이면서
발이 묶여버렸다.

이곳은 프랑스의 두오몽.

여기에 프랑스군의 소대장이 한 명 있었다.

그의 이름은 샤를 드골.

학식 있는 귀족가문에 태어난 드골은 열성적인 애국자였다.

드골은 적진에 숨어 들어가 독일군을 염탐하는 것으로 전장에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거듭되는 정보정찰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면서 그는 무공표창장을 받게 되었다.

이곳은 영국 런던.

위 사진 속의 남자는 영국의 부유층집안에서 태어났고 능력을 인정받아 초고속으로 승진해 마침내 해군장관에 오르게 된다.

그의 이름은 윈스턴 처칠.

처칠은 자신의 대담한 계획이 연합국의 운명을 바꿔놓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처칠은 자기주장이 강한 인물이었다.

갈리폴리 반도는 오스만 군의 경비가 삼엄한 곳이다.

처칠의 계획은 좁은 해역을 뚫고 올라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후 러시아까지 올라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러시아군에 보급품을 전달하고 동부전선을 강화할 수 있었다.

이 작전이 성공하면 연합국은 단숨에 전세를 뒤엎고 동맹국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었다.

이 작전은 전함만 100척 이상이 투입된, 그 당시까지는 역사상 가장 큰 수륙합동작전이었다.

런던에서는 처칠이 그의 작전에 대해 결과보고를 기다리고 있었다.

호주, 뉴질랜드, 프랑스, 인도, 영국군으로 이루어진 연합국의 손실은 막대했다.

전사자는 총 5만 6천 명이었으며, 보고된 부상자와 실종자의 수만 해도 13만 명이 넘었다.

처칠의 작전은 결국 참담한 결과로 돌아오고 말았다.

작전의 대실패로 민심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 결국 처칠은 해군장관에서 해임되었다.

처칠은 추락한 명예회복을 위해 재입대라는 결단을 내리고 곧장 최전선으로 달려갔다.

한편 히틀러는 연락병이라는 직책을 받고 서부전선에 투입되었다.

전선에서 수개월을 보냈지만 독특한 성격 탓에 히틀러는 전우들과 어울리지 못해 외로운 군생활을 해야만 했다.

어느 날 히틀러가 있는 참호에 연합군의 기습공격으로 인해 독일군은 후퇴를 서둘렀다.

하지만 포격 때문에 히틀러는 잠시 기절해 버린다.

잠시 후 깨어난 그가 눈을 떠보니...

그의 바로 앞에 한 병사가 자신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

그는 영국군의 이등병 핸리 탠디였다.

어떠한 심경의 복잡함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탠디는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고 히틀러를 살려 보내게 된다.

만약 그때 탠디의 손가락이 몇 센티만 움직여 방아쇠를 당겼다면 인류의 역사는 크게 바뀌었을 것이다.

한편 미국에서는 멕시코 혁명을 이끌던 판초비야와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비야의 부대는 미국의 석탄 수송열차를 약탈했는데 이 사건으로 인해 결국 전쟁으로 이어졌고, 미군은 비야의 부대와 전투를 벌이지만 큰 성과를 이루지 못한다.

특히 비야의 빠른 기병대를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유심히 지켜보던 한 명의 미군 대위가 있었는데 그는 노르망디 작전의 지휘관 조지 패튼이었다.

그는 기존의 기병대 방식을 버리고 자신이 생각해 오던 전술을 실행에 옮긴다.

바로 차에 총을 설치한 것이다.

이로써 패튼은 말보다 더 빠른 차를 이용해 비야의 부대를 물리치는데 큰 공을 세운다.

독일은 이탈리아를 동맹국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이탈리아를 설득한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이를 거부하고 독일군의 공격에 대비해 수 만 명의 병력을 알프스 국경에 배치한다.

그리고 그 병력들 사이에는 명사수가 있었는데

바로 무솔리니다.

그는 원래 사회주의자였지만 급진적으로 국수주의자로 변한 인물이다

반면 일본은 국가재정의 대부분을 군비확충을 위해 쏟아붓고 있었다.

동시에 군의 체계를 현대식으로 바꾸고 있었다.

일본의 지도부는 유럽의 전시상황을 일본이 세계의 무대로 진출할 수 있는 완벽한 기회로 보았고,
일본은 연합국에 합류하여 독일에게 선전포고를 한다.

그리고 일본은 아시아와 태평양에 있는 독일의 식민지를 점령해 버렸다.

이곳은 일본의 군사 훈련소.

여기 한 젊은 신병이 열심히 훈련 중이다.

그의 이름은 도조 히데키.

비슷한 시기, 영국의 처칠은 대대장이라는 계급을 달고 전선에 투입되었다.

영국군 사상자가 늘어날수록 처칠의 지휘능력이 더욱 간절해졌고 그는 초고속으로 진급하게 된다.

독일은 극비리에 치명적인 화학무기를 개발했다.

독일군은 연합군의 참호 속으로 염소와 포스겐 같은 독가스를 살포하기 시작했다.

병사 수백 병이 이 가스 때문에 참호 속에서 질식사하였다.

다급해진 영국과 프랑스는 미국에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유럽과 동떨어져 있던 윌슨 대통령은 참전을 꺼려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자문단들은 병력을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력히 권고했는데, 그들 중에는 35살의 미해군성 차관보 루스벨트도 있었다.

1915년, 미국인 백 명이 탄 영국 여객선을 독일 잠수함이 격침시킨 루시타니아호 사건이 터지면서 독일을 향한 미국인들의 분노는 커져만 갔다.

1917년 1월 16일, 마침내 그 분노가 절정에 달했는데
그 도화선은

윌슨에게 전달된 미국 정부가 가로챈 독일의 비밀전보였다.

전보의 내용은 독일이 멕시코에게 미국을 침공하면 자금을 지원하며, 미국과의 접경지역 땅을 되찾아주겠다는 약속이었다.

그 땅은 텍사스, 뉴멕시코, 애리조나였다.

가만히 있던 미국의 발을 묶으려고 했던 독일은 오히려 미국의 참전에 대한 구실을 준 것이다.

이로써 윌슨 대통령이 전쟁선언문에 서명하면서 미국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었다.

하지만 독일의 병력은 450만 명이었고, 미국은 겨우 10만 명의 상비군을 유지하고 있었다.

미국은 서둘러 군사력을 보강하고 전투경력이 있는 군대를 급히 프랑스에 보냈다.

그 군대에는 패튼 대대장도 속해 있었다.

조지 패튼은 가장 최신 군장비를 이용하여 지휘하기로 다짐했는데

그것은 바로 탱크였다.

다른 지휘관들은 기병대를 고집했지만 조지 패튼만은 탱크의 사용을 고집했다.

탱크는 서부전선에 투입되어 어느 정도 성과를 보여주었지만

연료가 빨리 소모되고 쉽게 진창에 빠지는 단점이 있었다.

독일에서 출발한 열차에는 무시무시한 비밀무기가 러시아로 가고 있었다.

그 무기는 바로 레닌이었다.

독일은 억류되어 있던 레닌을 풀어주며
러시아를 장악하여 러시아를 전복할 수 있게 도와 달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그리고 천만 달러가 넘는 자금을 레닌에게 지원해 주었다.

레닌은 스탈린을 만나 그의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그는 독일이 쥐어 주었던 비밀자금으로 무기를 구입했다.

마침내 사회주의자들이 겨울궁전을 점령하며 소비에트가 탄생하였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레닌은 1차 세계대전에서 러시아의 개입을 철회하였다.

이로써 전세는 독일에게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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