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 양

WORLD WAR(2부)-히틀러의 등장

MeRCuRyNim 2023. 4. 29. 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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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3년 반 동안 지속되고 있는 세계대전으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었다.

지칠 대로 지친 연합군과 독일군은 프랑스 북부의 참호에서 교착상태에 빠져있었다.

연합국은 전투의 지원을 위해 새로운 국가를 전쟁에 끌어들인다.

연합국의 요청에 미군병사들이 매일 만 명씩 프랑스에 도착한다.

연합국은 기다리던 든든한 지원군을 얻게 된 것이다.

미군이 연합군의 부대에 배치되어 전선이 새로운 국면으로 변모하기 전 모든 병력을 서부전선에 집결시킨 독일은 기습공격을 감행한다.

이른바 춘계 공세였다.

독일군의 특수부대는 연합군의 참호에 침투하여 전투 사령부를 공격했다.

공격은 성공적이었고 독일의 승리가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독일군은 이 기세를 몰아 파리를 공략하기 위해 마른강유역을 공격했다.

하지만 연합군은 마른에서 마침내 독일의 진격을 저지시킨다.

거기다 연합군의 반격으로 전투에서 승전을 거둔다.

그로부터 이틀 후 연합군은 아미앵을 공격하고 다시 한번 승리를 거둔다.

이러한 연이은 승전에 힘을 얻은 미군은 생미엘에서 최초로 공격을 주도하게 된다.

이 모든 공격의 최종목표는 프랑스에서 독일군을 완전히 몰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는 조지 패튼의 탱크 부대가 있었다.

패튼은 작전 전날밤, 적진의 심장부로 잠입하였다.

패튼에게는 정보가 필수였다.

이전의 작전에서 예상치 못한 복병이었던 탱크가 진창에 빠지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공격로를 미리 탐색한 것이다.

1918년 9월 12일 50만의 미군 병력이 프랑스 육군 사단과 함께 생미엘의 독일군 진지로 진군한다.

독일군의 저항은 완강했다.

하지만 패튼이 수집한 정보가 효과를 발휘했고 마침내 그의 탱크부대가 적의 전선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생미엘 전장의 또 다른 곳에서는 38살의 미군 준장 더글라스 맥아더도 맹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이 둘은 향후 수십 년간 협력자이자 경쟁자의 관계를 이어간다.

프랑스군과 미군 50만 명은 마침내 생미엘 탈환에 성공한다.

한편 벨기에 이프르 전선에서는 히틀러가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가스다!!!  가스! 가스! 가스!

하지만 이 가스는 기존의 연합군이 사용했던 가스와는 차원이 달랐다.

최루가스가 처음 사용된 이후 연합국은 독일의 전력을 따라잡기 위해 더욱 치명적인 가스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바로 머스터드 가스였다.

머스터드 가스는 참호에 수일간 잔류하며 접촉한 병사들의 피부와 호흡기관을 동시에 공격하였다.

가스에 노출된 히틀러의 손에는 물집이 생겼고 결국 후송조치되었다.

그리고 샤를 드골은 독일군에게 체포되어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다.
 

이렇게 잡힌 샤를 드골은..

수용소에서 탈출한다.

하지만 곧 잡힌다.(주요 인물이라 안 죽이는 듯;;;)

아르곤 숲에서는 연합군이 독일군과 교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교전의 한가운데에서 맥아더는 독일의 방어선을 뚫을 방법을 찾고 있었다.

맥아더는 서부전선 독일군의 참호를 촬영한 항공사진들을 연구했고 마침내 그동안 발견되지 않았던
독일군의 빈틈을 찾아낸다.

정보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맥아더는 독일군의 방어선을 뚫고 진격해 독일군의 참호들을 포위하기로 결심한다.

연합군이 아르곤숲에서 공격을 개시한다.

1차 대전 중 미군이 최대로 많이 투입된 작전이었다.

독일군의 전면적인 퇴각을 목표를 한 이 작전은 후에 백일전투로 명명된다.

수개월간의 격전 끝에 연합군이 마침내 방어선을 뚫었고 독일군은 결국 후퇴한다.

퇴로가 막혀버린 수만 명의 독일군은 결국 무기를 버리고 항복한다.

4년간 이어진 끊임없는 전투로 총 3천7백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다.

독일은 공식적으로 항복하게 되고,

독일인들은 예상치 못한 항복으로 충격에 빠졌으며 많은 이들이 국가의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때 히틀러는 군 병원에서 입원 중이었다.

히틀러는 복수를 다짐한다..

독일의 항복 이후 전쟁은 끝났지만 연합국의 지도자들에게는 협약체결이라는 문제가 남아있었다.

전쟁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강화조약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회의를 위해 각국의 지도자들이 프랑스로 몰려들었다.

각국은 자기들만의 안건이 있었다.

프랑스는 독일에 막대한 배상금을 부과하면서 추가적인 공격의지를 없애려 했고, 영국은 제재수위를 낮춰 공산국가인 소련과의 사이에서 독일이 방패역할을 해주기를 원했다.

이탈리아는 연합국으로 합류한 대가로 약속받은 영토를 원했고,

일본은 영토와 더불어 세계무대에서 강대국들과 일본의 동등한 지위를 보장하는 조항이 협정안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쟁의 공로가 컸던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14개의 조항이 담긴 평화안을 제시했다.

평화안의 핵심조항은 국제연맹의 창설이었으며 그것은
세계 평화유지를 위한 국제기구 창설을 제안한 것이었다.

강화협상은 각국의 이견을 조율하며 몇 달 동안 계속되었고 마침내 타결이 이루어지려 한 시기에 윌슨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중태에 빠져 프랑스를 떠나게 된다.

그의 병명은 스페인독감이었다.

스페인 독감은 5천 명 만의 목숨을 앗아간 치명적인 유행병이었다.

그렇게 6개월 뒤,
연합국은 마침내 조약을 체결한다.

하지만 그 내용은 윌슨이 바라는 공정한 방안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탈리아는 참전 시 약속받은 영토를 얻지 못했고,
일본 역시 영토를 얻지 못했다.

일본은 자신들의 요구를 무시한 연합국에 이를 갈며
복수를 다짐한다.

이 조약으로 인해 독일은 전쟁 배상금 8백억 달러를 갚아야 할 처지에 놓인다.

그로 인해 독일정부는 순식간에 파산해 버렸고 수백만명의 국민이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독일 국민의 이제 전투가 아닌 의식주와의 전쟁에 돌입하게 되었다.

독일은 혼란의 도가니였다.

처칠은 평화가 지속될 것이라 믿지 않았다.

그는 재선에서 간신히 승리를 거두어 의회에 입성했다.

다시 내각에 복귀한 처칠은 독일로부터의 위협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포로수용소에서 2년 반을 보낸 샤를 드골은 드디어 자유인이 되었다.

드골은 육군사관학교의 교관직을 맡았다.

그리고 프랑스가 전쟁재발에 대비한 준비태세를 갖출 수 있도록 탱크 같은 신기술 도입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한다.

맥아더 준장은 워싱턴 육군사관학교의 교장으로 부임하여 생도들을 이끌고 유사시에 대비한 전투 훈련을 시작한다.

메릴랜드 탱크 교육대에서는 조지 패튼 중령이 신병들을 훈련시키고 있었다.

이탈리아 밀라노,

무솔리니는 신문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1차 대전 승전국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원했던 영토를 얻지 못하였고, 이로 인해 이탈리아 왕국에 대한 민심의 불만은 높아지고 있었다.

무솔리니는 이틈을 이용해 새로운 이탈리아에 대한 자신의 꿈을 역설하고자 했고, 자신의 신문을 이용하기로 했다.

무솔리니는 라디오를 이용해 특유의 언변으로 정부를 비판하며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무솔리니는 정부에 불만을 품은 군인들을 모아 검은 셔츠단이라는 조직을 창설했다.

독일 노동자당은 베르사유 조약이 체결되면서 생겨난 반정부 단체 중 하나였다.

히틀러는 이곳 비밀아지트에서 잠입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곳에서 히틀러는 노동자당원들이 공산주의자가 아닌 민족주의자 들였고 그중 많은 이들이 게르만우월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들의 사상은 평소 히틀러가 가슴속에 품고 있던 사상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히틀러의 유창한 언변은 당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히틀러는 독일군을 떠나 노동당 활동에 전념하기 시작한다.

그의 수려한 언변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는 곧 당의 선동부장이 된다.

그는 자신이 화가지망생이던 시절의 실력으로 하나의 로고를 만든다.

이로써 나치당이 탄생하였다.

1922년 국민의 민심을 등에 업은 무솔리니와 3만 명의 검은 셔츠단들은 로마로 진격하였다.

그들은 왕궁을 급습해 이탈리아 국왕에게 강제로 권력을 넘겨받았다.

불과 몇 달 전까지 신문 편집장이었던 무솔리니는 이탈리아의 막강한 권력자가 되었다.

무솔리니에 영향을 받은 히틀러는 나치당을 이끌고 뮌헨을 습격한다.

정부관료들이 모여있는 뮌헨의 한 술집을 습격하는 히틀러..

이렇게 술집을 나온 나치당 앞에는..

경찰이 대기 중이었다.

영창 가자.

이렇게 히틀러는 체포되어 교도소에 수감되었고,
수감되어 있는 동안 한 권의 책을 쓰는데

그 책의 이름은 '나의 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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