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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문명의 심볼 - 고대인들이 바라본 스와스티카 그리고 학계의 주장과 그것의 반증

MeRCuRyNim 2023. 6. 12.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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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와스티카는 산스크리트어로 '아주 좋다, 행운을 빕니다'라는 의미라고 할지라도  이 심볼이 그저 '행운'을 상징하는 클로버 마스코트처럼 사용되어 왔다고 하기엔 무엇인가 논리에 맞지 않는 것이 많다.

 
인류 역사의 많은 문명에서 스와스티카가 동일하게 행운의 상징으로 여겨졌을 것 같지 않으며, 각 종교에서 스와스티카를 사용했다는 것은 '행운' 이상의 어떤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 산스크리스트어로 '행운'이라는 의미로 재정의 되어 계속 전해져 왔을 것이라 여겨진다.

심볼은 고대인들에게나 현대의 우리들에게나 시공을 넘어 사회 구성원간의 감정과 의사 전달의 유용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으며 때로는 긴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 보다 훨씬 직관적이고 신속하며 강렬한 느낌을 준다.

 
스와스티카를 보는 학자들의 관점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한 쪽은 많은 문명에서 독립적으로 발생한 것이며 단지 그 형태나 의미가 공통점을 보이는 것뿐이라는 의견,  다른 한쪽은 심볼이 원래는 단일의 공통기원을 가졌으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각 문명권으로 퍼져나간 뒤 다른 모양과 의미들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독립적으로 발생했다는 의견은 어떠한 난관에 직면하게 되는데 '만'자 심볼 형태의 단순성 때문에 모든 문명권에서 아주 우연히 독립적으로 만들어질 수는 있다고 하여도 그 의미에 있어 크게 벗어나지 않는 동일성 설명할 수가 없었다.

 
결국 자신들의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태양숭배나 특정 별에 연계하게 되는데 과거 칼 세이건도 이 상징에 대해 하늘의 혜성을 보고 고대인들이 영감 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각 문명에서 독립적으로 생겨나 어마어마한 우연의 일치로 공통적인 현상을 보인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론을 과반수 이상의 학자들이 채택하고 있다.

 
다른 한 쪽의 의견을 쉽게 표현하자면 아버지의 유언으로 가훈의 증표를 받았던 7형제가 각기 다른 지역에 흩어져 살면서 이를 후대에게 전해 준 것으로 비유될 수 있다.

세대를 거듭하며 증표에 내재된 가훈은 망각했지만 그 형태만은 그대로 유지되어 온 것 같은 경우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두가지 관점에 대한 의견들은 완전히 상이한 결과를 도출해 내게 된다.

아주 먼 옛날 현재의 인류가 기억하지 못하는 임의의 시간대에 어떤 존재로부터 그 상징의 의미를 전달받았지만 오늘날 그 의미는 이미 망각된 상태에서 발견된 유물을 통해 망각 속에 잔재된 흐릿한 기억에 의존해 퍼즐을 맞춰가며 그 상징이 갖고 있는 본래의 의미에 다가가 보려는 시도는 어렵고도 매우 조심스러운 작업이다.

 
스와스티카 상징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나?

1908년 러시아 국경 근처 Mezin의 구석기 정착지에서 발견된 매머드 엄니에 새겨진 스와스티카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식별 가능한 '만'자 패턴이며, 탄소 연대 측정결과 약 15,000년 전이라고 밝혀졌다.

탄소연대측정법의 오류를 감안하여 이 결과를 맹신해서는 안되지만 발견된 장소가 후기 구석기시대 정착지이므로 상당히 오래된 것임은 부인할 수 없다.

이 상징을 사용한 가장 초기의 문화 중에는약 8000년 전 남부유럽의 신석기시대의 다뉴브 밸리 문명,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빈카 문화, 트리필리안 문화 및 바르나 문명 등이 있으며 불가리아 북서부에서 약 7000년 전의 것도 발견되었다.

유명한 인더스 밸리 문명, 고대이집트 문명, 수메르라고 알려진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 중앙아시아의 탱그리 문화권에서도 많이 발견되었기에 어느 특정지역만이 아닌 지구 전역에 다양한 분포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후 수천년이 지나고 4대 종교가 발생하면서 각 종교는 이 상징을 공용하게 되었으며 모든 종교에서 이 심볼을 각기 다른 형태로 사용해 왔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종교가 창시될 때 이 심볼이 의미하는 메시지를 공감하였기에 그것을 공통적으로 사용했다는 이야기이다.
 

 
심볼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

스와스티카 심볼을 인류에게 알려준 존재는 당시 고대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형태를 고려했으리라 생각된다.

기하학적으로 매우 복잡한 것은 더 많은 메시지를 부여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입장에선 이해하기 매우 난감한 의미이며 세대를 거쳐가며 변형의 가능성이 높아지기에 가능하면 가장 단순하고 직관적 형태를 취했을 것이다.

 
인류역사에서 문자가 발생되는 과정을 보면 처음에는 사물을 그대로 형상화한 것으로부터 하였다.

물론 추상적인 것을 형상화하는 그들 나름대로의 주관적 표현이 있지만 초기 상형문자 중 일부는 오늘날 고대언어학의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도 오로지 직관에 의존해 교감할 수 있는 것들이 존재한다.

심볼의 형태를 아주 간략하게 분류하면 정적인 느낌과 동적인 느낌, 그리고 방위나 방향을 의미하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단순한 상징 정도는 직관만으로 고대인들과의 교감이 가능하다.

 
물론 의미하는 바를 아주 정확하게는 이해할 수 없지만, 예를 들어 사각형을 보면 고정적이고 부동적이란 느낌을 받게 되는데 이는 현대에 사용되는 정지를 의미하는 사각형을 누르면 음악이 멈추거나 영상이 멈추는 현상 때문일 것이다.

고대인들 또한  사각형에 대해 비슷한 인식을 가졌고, 그래서 사각형은 변치 않는 고정된 집이나 건물,  믿음, 신뢰, 신의 등 부동의 의미를 부여해 사용되었다.

삼각형의 꼭지점은 주로 방향성을 나타내는데 이것 또한 과거와 현재의 인류가 비슷하게 인식하고 있다.

 
고대인들은 삼각형이란 마치 날아가는 화살촉처럼 방향과 관계된다는 생각을 하였고 오늘날 현대인들의 방향 표시도 아직까지 화살표(Arrow)를 사용한다.

 
스와스티카를 보면 고정된 느낌이 아닌 위의 그림처럼 동적인 느낌이란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발굴된 많은 스와스티카 중 일부는 아주 친절하게 자신들의 회전 방향까지 설명해 주고 있다.

 
위와 비슷한 심볼은 현대의 우리도 사용하고 있는데 재활용을 나타내는 심볼은 상품의 용기나 포장재의 순환 재사용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현대에는 심볼의 국제표준을 통해 해석의 편차를 줄여나가고 있지만 고대인들과 오늘날의 우리들도 이 심볼을 보면 순환하다, 빙빙 돌다, 회전한다, 연속된다 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스와스키타는 고정된 느낌이 아닌 분명히 회전하는 동적 상징이며 이것은 대부분의 학자들도 공감하고 실제 이 상징을 사용했던 고대의 많은 문명에서도 이를 동적 의미로서 무한순환하다, 연속되다, 영원하다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스와스티카의 방향성

스와스티카는 시계방향, 또는 역방향으로 자유롭게 표현된다.

1979년 산스크리트 학자인 P. R. Sarkar는 스와스티카의 방향에 따라 긍정과 부정의 의미로서 차별화 되어 있다라고 주장했는데, 위의 그림과 같이 시계방향은 긍정, 역방향은 부정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특정 지역의 사례들만이 그의 주장을 뒷받침 할 수 있을 뿐 고대로부터 내려온 수많은 지역의 유물에서 스와스티카의 방향은 제각각이며 별도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

 
비교적 근래 들어 심볼의 방향에 따른 의미를 두자는 의견이 많아지고 있지만 이는 2차 세계대전 때 나치의 상징이 남긴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눈물겨운 자구책으로 여겨진다.

나치의 하켄크로이츠 심볼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워낙 강해서 지금도 유럽에서는 이 심볼을 사용이 거부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의 부정적 인식을 바꾸고자 하는 차원에서 나치의 '만'자와 방향을 바꿔 차별성을 두려고 하는 움직임이 있다.

시계방향 또는 역방향이라는 것은 관찰자의 위치에 따른 차이일 뿐이며, 예를들어 시계를 마주 본다면 오른쪽으로 움직일 것이고 시계 뒤편에서 바라본다면 왼쪽으로 움직이는 단순한 위치 변화의 차이이다.
 
태풍처럼 저위도 부근을 기준으로 오른쪽 왼쪽 회전 방향이 다르다고 해서 태풍이라는 본질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래서 스와스티카의 방향에 따른 의미 구별은 큰 의미를 가지지 않으며 동적 표현이라는 것만 유효하다.


스와스티카는 북극성의 상징이다.

중앙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에 있어서 북극성은 매우 신성시되었고 고대이집트의 파라오는 생의 마감 이후에 자신이 가야할 목적지가 바로 북극성이라고 생각했다.(북극성만을 신성시했던 것은 아니다)

고대 몽골의 스와스티카

 
자전하는 지구 회전축의 북쪽 방향에 유난히 빛나는 북극성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별, 밤이나 낮이나 항상 그 자리를 지키는 별이라 생각되어 신성시 여겨졌으며, 특히 유목생활을 했던 고대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에게 있어서 항상 북쪽 방향에 위치한 북극성은 그들이 드넓은 초원의 밤에도 길을 잃지 않게 하는 아주 유용한 이정표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 지역의 고대인들이 북극성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 북두칠성 또한 신성시 했고 이 북두칠성의 계절변화에 따른 궤적을 상징한 것이 스와스티카의 날개이며 그 중심점이 북극성이라고 한다.

따라서 스와스티카 상징은 곧 북극성과 북두칠성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중앙아시아의 많은 학자들이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주장은  많은 헛점을 가지고 있다.

 
첫 째, 고대인들은 별자리를 천구에 붙어있는 2차원적 개념으로 받아들였는데, 사계절 동안 변화했던 별의 위치까지 감안하여 형상화한 것이 아니라 천구에 고정되어 있는 형태로 받아들였다.

실제 동적 움직임에 대해 표현한 것은 별자리 자체가 아닌 태양의 천구 궤적인 황도면이었다.

그래서 하늘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별과 별사이의 선을 그어 신화 속의 신, 동물 등으로 묘사했고 위의 그림처럼 별자리에 이름을 붙였던 것이다.

 
북극성과 북두칠성의 모양 자체가 스와스티카로 연결 짓기에는 매우 억지스러울뿐더러 이를 어떻게든 연관 짓기 위해서 사계절 동안의 위치 변화까지 감안하여 도식화하는 건 확실히 무리한 시도이다.

저 국자모양의 별을 작년 가을 겨울 그리고 올해 봄에 있었던 위치까지 기억해내면서 사계절의 궤적을 도식화하기에는 고대인들로서는 무리였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별자리도 계절별 궤적을 감안하여 형상화했던 증거가 나와야 하는데 그것과 연관된 유물은 발견되지가 않았다.


둘째, 북극성은 중앙아시아처럼 고위도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별이기 때문에 적도부근을 기점으로 저위도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북극성을 볼 수 없는 남반구의 사람들이 지평선 아래 보이지 않는 북극성을 '만' 자의 상징과 연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세 번째, 발견된 스와스티카 중 가장 오래된 것은 후기 구석기시대인 12,000~15,000년 전이며 그 시기 지구의 축은 현재의 북극성을 가리키지 않았다.

그 이유는 지구의 세차운동 때문이다.


자전하는 지구는 달과의 중력작용으로 인해 완전한 구체가 아닌 적도 부근이 불룩한 모양이며 이것이 태양, 주변행성들과의 중력작용으로 지구 축이 미세하게 변하는 것이다.

이런 자전 축의 변화는 약 72년에 1도씩 가상의 원 궤도로 이동하여 한바퀴 회전하는데 약 25,920년이 소요된다.(이 수치는 학자마다 계산하는 방식이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천문학 프로그램으로 가동하면 후기 구석기시대의 북극성은 위의 사진과 같은 모습이다.

 
따라서 12000~15000년 전에는 지구축의 북쪽 방향이 지금과 같은 북극성이 아닌 베가별(직녀성)에 가까웠다.

 
세차운동에 의한 이런 지축변화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12,960년 후엔 지구축 북쪽 방향이 베가성으로 갈것이며 25,920년이 되어야 다시 지금 자리로 돌아와 북극성을 가리킬 것이다.

따라서 후기 구석기 시대 당시 지축의 북쪽 방향은 분명히 오늘날과 달랐으며 신성시한다고 했던 북극성은 그냥 베가성 주위를 도는 일반 별이었다.


스와스티카는 태양을 의미할까?

스와스티카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반 이상이 태양과 연관 짖고 있으며 특히 유럽을 중심으로 한 학자들은 발굴된 이 심볼이  태양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동적표현의 스와스티카를 회전형태의 태양으로 비유하지만 이것은 논리적 모순에 직면하게 된다.

고대인들은 태양이 자전한다고 생가하지 않았으며 지평선으로 뜨고 지는 태양은 그들에게 동적 대상이었다.

비록 실제로는 태양이 자전을 하지만 우리의 눈으로 볼 때 제자리에서 회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태양이 내뿜는 코로나도 계속 회전하지 않으며 태양이 자전한다는 사실을 알게된 것은 인류 전체의 역사에서 꽤 짧은 시간이다.



위의 사진은 실제 고대인들이 태양을 표현한 모습이며 대부분 고정된 중심원에 직선으로 내뿜는 빛을 형상화했다.

킴벌리 지역의 츄링가 (Tjuringa) 신성한 돌에 있는 태양의 상징.

 

선사시대 태양의 상징

 


위 그림에서 태양 중심에 있는 회전 심볼에 대한 해석으로 태양을 중심으로 모든 행성이 그 주위를 돌고 있는 형태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다수 존재한다.
 
하지만 중세시대까지만해도 인류는 지동설과 천동설의 갑론을박으로 의견이 분분했으며 신석기시대에는 태양계의 행성들이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한다는 것을 이해하기란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이는 태양 중심에 상징이 있다고 해서 태양으로 볼 것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를 나타내기 위해 강조하는 것이라 추론할 수 있다.


위 사진의 철기시대 티벳 유물을 보면 태양과 달이 그려져 있고 분리된  스와스티카가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태양과 분리된 상징임을 나타낸다.

 
위 사진은 고대 아르메니아의 유물이며 말 뒷다리의 수레바퀴 상징과 스와스티카는 확실히 분리된 개념이지만 학계에서는 저 수레바퀴조차 태양으로 해석한다.

상징의 목적이 함축된 의미 전달의 목적이기 때문에 하나의 상징에 여러가지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할 수는 있겠지만 같은 문화권에서 동일한 시간대에 누군가 작품을 만들며 여러 가지 상징에 동일한 메시지를 담는다면 심볼이 가지는 고유의 존재 가치는 무의미해져 버린다.

따라서 스와스티카는 태양과는 별개의 상징인 것이다.

학자들이 태양으로 결론 짓는 또 다른 근거는 많은 고대문명에서 태양을 숭배했다라는 것이다.

태양이란 존재는 어둠을 몰아내고 빛을 가져다주며 항상 변하지 않는 존재이자 생명의 근원이기에 여러 시대에 숭배되어 왔다.

고대인들이 태양을 숭배하게 된 이유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단지 만물의 에너지원으로서 태양을 숭배했다기보다는 하늘에 있는 무엇인가를 숭배했고 그래서 하늘에 집착하였으며 그것을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학계에서는 그것을 태양이나 별을 연관 짓지만 이 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아주 오래 전 신은 무형의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분명히 실체가 있는 유형의 존재에서 비롯되었으며 그들이 임의의 어느 시간에 어떠한 이유로 종적을 감춘 후 그들에 대한 실체적 기억이 소멸되어 가며 신이란 존재가 지극히 무형의 추상적인 개념으로 발전되었고 신 = 태양 = 수레바퀴 등으로 상징되어 왔으며 고대인들은 하늘에 떠있는 그 무엇에  광적으로 집착하게 된 것이다.

수메르, 이집트, 인더스, 황하 문명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체계화된 문명이 갑자기 출현한다는 것인데 이 같은 출현은 고대문명의 기원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는 매우 곤혹스러운 일이다.
 
우리가 신석기시대라고 분류하는 바로 그 시대에 지구 어느 지역에서는 수메르와 같이 고도로 세련되고 체계적인 문명이 아주 급작스럽게 출현한 것이다.

이런 현상은 메소포타미아 문명만이 아니라 다른 고대문명권에서도 구석기-신석기-청동기라는 점진적 발전 단계가 아닌 급작스런 출현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이것을 단편적인 문명진화론으로 풀어가기엔 매우 어렵다.

후기 구석기 시대에서 신석기로 넘어오면서 출현한 고도문명으로의 진보과정을 명확히 설명할 연결고리가 없기 때문이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결국 설화와 맞닿게 되는데, 세계의 모든 신화와 설화는 하늘에서 내려온 존재가 반드시 등장하며 그들이 문명이나 국가를 이루었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오늘날 우리들이 사용하는 원의 360도 개념이나 1년의 365일, 하루의 24시간 개념, 1시간이 60분인 개념은 이미 고대 수메르-이집트에서 사용해 왔다.

다만 이상한 것은 지식을 전해준 존재들이 인간의 언어 체계는 완전히 방치했다는 것이다.

문자의 발전단계를 보면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고 이를 점진적으로 발전시킨 흔적을 볼 수 있으나 초기 상형문자를 사용했던 문명 수준에 맞지 않는 고도의 법체계와 교육체계, 건축술과 오늘날에 버금가는 수학체계를 갖고 있었던 것에 대해 설명이 불가능하다.

이집트 연산식은 오늘날 컴퓨터에 전력을 공급하는 시스템 바이너리 체계를 기반으로 했음이 밝혀졌으며 고대 건축술에 대해 많은 학자는 '수십년 동안 노예와 인부를 동원해 만든 것이다'라는 아주 피상적 결론을 내리지만 실상 그들은 그 건축에 사용된 고도의  수학원리에 대해서는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단지 수백만명의 노동력이 있다고 해서 해결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실에 실제로 존재했던 어떤 것이 추상적 개념으로 변질되어 태양 또는 별이 신의 상징이 되어 숭배된 것일까?

고대 조상들이 태양을 숭배 했다고는 해도  명확하게 특징의 구별이 가능한 스와스티카 심볼까지 모두 태양을 표현했다라고 단정하기에는 성급하다고 할 수 있다.

스와스티카는 태양과 구분되는 다른 어떤 것을 상징하는 것이며 간혹 태양의 중심에 그상징을  그려 넣는 것은 태양이 중심이 아니라 태양조차 포함시키는 포괄 적인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고대 아시리아

 

고대 수메르

 

 

그리스 천둥의 신 타라니스(로마에선 주피터, 켈트족의 바퀴의 신이다)

 

고대 로마 유적지의 바퀴신(주피터)

 

천둥신에게 봉헌되는 Rouelles라고 불리는 성스러운 수레바퀴(기원전 50~기원후 50. 벨기에)

 


현재 수레바퀴 유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은 1980년 현재 파키스탄의 신석기 시대  정착지에서 발견한 6,000년 전 구리로 만든 바퀴 부적이다.

 


고대의 신이 위의 유적에 표현된 것과 같은 모습은 아니지만 무형의 형이상학적 존재가 아닌 분명히 실체가 있는 유형의 존재였고 수레바퀴와 깊은 관계가 있었기에 스와스티커는 종종 수레바퀴와 혼동되어 표현된다.

불교의 상징인 수레바퀴. 그 중심에 새겨진 스와스티카

 
특히 힌두교, 자인교, 불교등 인도를 중심으로 한 종교에서는 수레를 매우 신성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그들은 이것을 철학적 개념으로 발전시켜 왔다.

고대의 힌두교는 지금처럼 교리가 정립된 상태가 아니었으며, 다신교 사상과 주변국의 종교적 영향을 받아 혼합된 사상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고대 힌두교를 기반으로 불교가 탄생했고 자인교는 다시 불교에서 파생되어 나왔기 때문에 인도를 중심으로 한 이 세 종교의 철학과 교리는 매우 유사하다.


하지만 이들도 오늘날까지 스와스티카, 수레바퀴, 태양을 정확히 구분하지 못하고 있으며 경계가 매우 모호한 혼재된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힌두교에서의 수레바퀴는 추상적 개념이 아닌 전륜성왕의 실체적 보물병기(寶器)로 왕이 행차할 때 반드시 앞서 날아다니며 땅을 평탄케 하고, 산악과 암석 등을 깨뜨려 부수고, 여러 민족을 굴복시킨 비밀무기로 말하고 있다.

법륜은 금륜왕, 은륜왕, 동륜왕, 철륜왕의  4종이 있으며 윤보도 금륜, 은륜, 동륜, 철륜 이렇게 4종이 있다.

불교에서는 수레바퀴를 cakra 작흘라(斫訖羅)라고 부르는데 이 상징은 법륜 또는 윤보라고 하며 다분히 추상적인 개념으로 부처님의 교법이라는 사상, 철학적 개념으로도 설명한다.

이집트 고대유적지에서 발견된 발바닥의 스와스티카와 눈(위), 아래는 스페인 St Tecla 's Hillfort에서 발견된 심볼 - 후기 철기 시대


위의 그림처럼 스와스티카는 길조의 발자국 또는 부처의 발자국이라고도 하는데 이 유물은 아이러니하게도 불교유적지에서 나온 게 아니라 고대 이집트 유적지에서 발견된 것이다.


인도네시아 자바 마겔랑(Magelang)에는 세계 최대의 불교 사원이자 불교 순례의 성지인 보로부두르 사원(Borobudur Temple)이 있다.


8~9세기에 지어진 이 사원의 입구는 불교 우주론을 상징하는 세 단계 구조물을 거쳐 맨 위로 올라가게 되어 있으며 전체적인 건물의 바닥 형태는 피라미드와 비슷하고 상층부는 마치 법륜이나 수레와 같은 형상을 하고 있으며 건물의 꼭대기로 올라가면 위와 같이 종 모양의 상징이 있다.


이 건물에는 법륜, 윤보라 불리는 형상 위에 좌불상이 있고 부처가 앉아있는 자리는 진리의 바퀴, 법륜, 윤보라고 하며 부처의 교법, 사상, 철학적 개념으로 설명한다.


오늘날 이 세 종교(힌두교, 불교, 자인교)는 스와스티카, 수레바퀴, 태양을 설명하는 데에 있어서 구분의 경계가 모호하며 명상이나 깨달음의 단계 또는 부처의 교법 등 다소 신비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또 다른 의미로 행운, 번영, 풍요라는 의미로도 통용되고 있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스와스티카의 가장 핵심적 메시지는 '영원의 상징'이며 이것은 우주론(Cosmology)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의 사진은 인도에 있는 태양의 신전이라고 하며 자인교의 사상인 자이니즘에서는 스와스티카를 Suparshvanatha (24명의 Tirthankaras (정신적인 교사와 구제자)의 7번째)를 상징하며 이 수레도  '영원의 상징'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사상은 불교처럼 카르마(업), 윤회사상, 깨달음이나 의식수양체계, 법도 등을 형이상학적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영원의 수레바퀴'라고 부른다.


이전의 추상적 표현과 달리 6~7세기 고대 불교의 탱화에 나타난 법륜이나 윤보는 그 실체가 존재한다.

6~7세기의 윤보가 그려진 탱화

 

하늘에 떠 있는 수레

 
위의 동전은 버마의 고대 유적에서 발견되었으며 지금은 멸망된 '퓨' 민족의 '퓨-할린'이라고 불리는 동전이다.

퓨민족은 후기 문명보다 진보된 고대 건축가들이 있었다고 하며 불교의 철학도 이 문화권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고대 기독교의 심볼

 
사람들에게 기독교의 상징에 대해 질문한다면 대부분 십자가라고 얘기할 것이다.

하지만 초기 기독교의 신의 상징은 수레바퀴의 형태였다.

기원전 330년 이전에 사용되었던 유대교 야훼를 묘사한 동전

 

성경의 에제키엘서에 나온 설명을 토대로 한 그림

 


위 사진 속의 조각들은 기독교의 박해가 가장 심했던 AD 2세기 전후 카타콤베의 지하 유물들이며 초기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 살았던 카타콤베에서 발견된 유물을 보면 익두스 표시와 물고기 그리고 스와스티카가 나타나 있다.

익두스는 그리스어로 뜻은 다음과 같다.

ΙησΟυs(이에수스) 예수

ΧριστΟυs(크리스투스) 그리스도

ΘεΟs(데오스) 하나님

ΥιΟs(휘오스) 아들

Σωτηρ(소텔,소테르) 구주

ΙΧΘΥΣ(익두스) :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우리의 구주이시다"

 


위 그림의 수레바퀴를 상징하는 심볼에서 익두스의 글자가  파란색 선과 같이 생성된다. 

 
그리고 물고기 형상은 예수가 태어난 기원후부터 약 2000년간 황도 12궁에 속한 물고기자리를 초기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시대를 대표하는 상징이라 여겼고 물고기 형상 안에 익두스를 기록했다.


위 사진은 1656년부터 1667년까지 지안 로렌조  베르니니가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을 설계하고 건축했을 때 이 수레바퀴 상징을 광장 바닥에 표현한 것이다.


일부 주장에 따르면 베드로 광장의 전체 형태가 마치 이집트의 대표적 상징인 앙크(Ankh)와 비슷하다고 연결 지으며 프리메이슨의 기획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러한 주장보다는 지안 로렌조 베르니니의 설계 당시에는 기독교에서 강한 의미를 상징하는 마땅한 심볼이 없었기에 고대로부터 내려온 앙크 심볼을 차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오늘날 앙크는 고대의 신, 생명, 영원, 천국의 열쇠, 지식의 열쇠, 시간과 공간의 무한성 등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되고 있으며 당시 베르니니의 정확한 의도는 알 수 없지만 고대 이집트 대표심볼인 앙카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추측이 있다.

당시 카톨릭에서는 위의 의미와 같은 심볼이 많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이집트로부터 약탈해 온 오벨리스크를 베드로 광장 중앙에 세워 그 위에 십자가를 놓은 것도 카톨릭이 이교도를 누른 상징적 의미와 함께 권위를 높이기 위한 의미이기도 했다.


위 그림은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발견된 수레바퀴 그림이며 오회분 4호 묘에 그려진 '수레바퀴 신'이라고 명명된 벽화이다.

수레바퀴는 불교적 관점으로는 윤보의 철륜과 비슷한 개념으로 해석될 수도 있으며 단순히 수레바퀴를 만드는 대장장이로도 볼 수도 있다.

여러 유적의 유물을 참조해 보면 고대의 신은 무형의 존재가 아니라 현시적 유형의 존재였으며 어떠한 방식으로 표현이 되었든 신과 수레바퀴는 깊은 관계가
있는 듯하다.


그리고 수레바퀴, 스와스티카, 태양은 각각 독립적인 형태와 의미가 존재한다.

스와스티카의 형태는 수레바퀴와 매우 비슷하기 때문에 혼동을 줄 수 있지만 태양과는 확연히 구분되며 많은 유물들에서도 태양과 스와스티카를 분명히 구분하고 있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고대문명이 태양숭배를 숭배했으니 하늘에 떠있는 둥근 형태는 오직 태양이며 수레바퀴=스와스티카라=태양이라는 단편적 결론을 내리고 있다.(이런 학자들도 스와스티카와 수레바퀴가 영원을 상징한다는 부분에는 모두공감하고 있다)

오른쪽은 조지아 상징 borjgali 왼쪽은 조지아와 인접한 국가인 아르메니아

 
아르메니아에서는 'arevakhach' 'kurkach'이라고 하며 비교적 형태가 아주 잘 보존되어 있으며 '무한한 시간의 흐름'이라는 구체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아르메니아의 민속신앙(Neopaga)에서는 'Vahagnakhach(태양 십자가)'라고도 한다.

 

고대 켈트 구리 동전

 
유럽의 켈트족이나 게르만족들에게 있어서 수레바퀴 형태의 심볼로서 탄생, 생명, 쇠퇴, 죽음이라는 인생의 되풀이되는 과정을 의미하며 사계절의 8축제날을 위한 절기 표식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위의 그림은 세월의 수레바퀴(Wheel of  the Year‎)라고 칭하여 심볼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켈트족의 아노고 드루이드교가 나타나며 영국의 스톤헨지도 이 심볼과 무관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바이킹 민족의 심볼(슬리브민족)

 


켈트 십자가는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브리튼, 웨일즈 전역에서 볼 수 있는 상징이다.

켈틱(Celtic)이란 단어는 기원전 500년부터 서기 400년까지 영국과 서유럽에 거주했던 사람들을 칭하며 로마제국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

추상적인 개념으로 켈트 십자가는 신성한 에너지가 만나는 장소를 대표하며 그 중심은 모든 우주적 힘이 상주하는 근원이라고 설명한다.

켈트 족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의 주장은 제각각으로 십자가의 네 방향이 동서남북을 의미한다거나 인간의 네 부분, 그리고 세상의 4 원소(공기, 지구, 물, 불)로 주장하기도 한다.

 
만약 4 원소를 의미한다면 고대 그리스의 의미와 동일해지는 것이다.



켈트족은 오각형(펜타그램)을 자주 사용하며 이것은 위 4가지 원소에 Spirit의 개념을 추가해 위의 그림과 같이 표시한다.



이 펜타그램은 고대 헬레니즘 문화에서 유행했던 상징이며 기원전 2세기 고대 로마 반지 유물이 많이 발견된다.

 
이 오각형의 꼭짓점 사이에 새겨진 글자는 고대 히브리어로서 유다, 예루살렘과 관계가 있다.

펜타그램의 중앙은 다섯 가지의 원소를 창조한 창조주를 의미한다.

 
이 펜타그램은 켈트족의 민속신앙 행사에도 사용되었으며 정통카톨릭에서는 이들을 이단(pagan)으로 정의해 사탄 영화의 단골 소재로도 많이 이용되어 왔으며 컴퓨터 중세 게임에도 많이 등장하는 심볼이다.

사실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소재로 쓰였지만 실제 사탄의 표식으로 인식하는 사람들도 있다.

펜타그램의 해석으로는 5 원소를 의미하기도 하고 어떤 학자는 오감의 상징이며 그 중심에 6번째 감각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켈트족은 더블 트라이앵글(헥사그램)도 사용하였으며 이것은 아르메니아에서 스와스티카와 병행하여 사용되고 있는 상징이다.


헥사그램은 아르메니아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고 수많은 지역에서 발견되는 상징이며 이디오피아의 렐리발리 교회 내부에서도 발견된다.


스와스티카는 육각형(헥사그램)과 병행해서 자주 사용되었으며 이 심볼 역시  전 세계적으로 스와스티카와 함께 사용되어 왔던 것이다.

 
이것은 상징적 의미도 있지만 실제 자연계에서 발견되는 놀라운 비밀을 포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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