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 양

WORLD WAR(5부)-태평양 전쟁

MeRCuRyNim 2023. 5. 16. 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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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에 들어서 최초로 미국이 외세에 침략을 당하게 된 것이다.

태평양에 주둔하고 있던 미국의 함대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루스벨트는 공습 다음날 일생일대의 연설을 한다.

일본의 진주만 공습은 엄청난 군사적 성과였다.

하지만 일부 군지휘관들은 이를 두고 많은 고심을 했다.

일본의 공습 이후 24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서 루스벨트는 일본에 대한 선전포고문에 서명한다.

미국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지만 다시 동참하게 된다.

일본은 계속해서 아시아 정복계획을 실행해 나간다.

먼저 태평양의 섬들을 공격했는데 아시아 전역을 석권하려면 필리핀을 작전기지로 삼아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미국령의 필리핀이었다.

일본은 진주만을 공격한 지 불과 10시간 만에 필리핀을 공격한다.

필리핀을 사수하는 임무는 더글라스 맥아더가 맡고 있었다.

거침없이 어어지는 일본군의 공격으로 맥아더의 병력은 수세에 몰리고 있었다.

미국의 지도층은 일본이 필리핀을 장악할 경우 태평양에 있는 다른 섬들을 추가공격할 것이며, 석유자원을 확보한 후 미국의 서부연안을 공격할 수도 있다며 우려하고 있었다.

일본군의 공습이 늘어가고 보급품이 부족한 상황에서 맥아더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후퇴밖에 없었다

맥아더는 코레히도르섬에 있는 거대한 터널에 임시작전부를 설립한다.

히틀러는 일본이 미국에 도발하는 과정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진주만 공습이 벌어진 지금이 다음 계획을 실행하는데 적기라고 판단한다.

사실 히틀러는 이미 미국침공을 계획하고 있었다.

히틀러는 독일이 세계패권을 장악하려면 먼저 최대의 위험세력을 굴복시켜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1941년 12월 11일 일본이 진주만을 공습한 지 4일 만에 히틀러는 미국에 선전포고를 한다.

히틀러의 전쟁이 전 세계로 확대되었다.

그의 최종 목적은 국경 없는 세계를 만드는 것이었다.

히틀러는 독일과 폴란드 그리고 다른 독일의 점령지역에 나치군을 보내서 장애인, 집시, 성소수자, 유대인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나치군은 유대인들을 열차에 태워 강제 수용소 중 한 곳에 도착한다.

이 수용소는 체계적으로 구성된 살인공장이었다.

이 가스실에서 수백만명의 유대인들이 학살되었다.

히틀러는 1차 대전에 참전했을 당시 가스 공격을 당한 경험이 있었다.

그 고통을 아는 그가 가스를 이용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루스벨트는 극심한 압박에 시달린다.

미국 대통령 역사상 최초로 두 개의 전쟁을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필리핀에서의 전투는 약 3개월 동안 지속되었다.

마침내 일본군이 미군의 벙커로 포위망을 좁히기 시작했다.

미국의 영토를 내주는 것은 맥아더에게는 꿈에서 조차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맥아더는 목숨을 바쳐서라도 필리핀을 지킬 각오였다.

루스벨즈 대통령은 서둘러 결정을 내려야 했다.

사령관을 잃는다면 그것은 미군의 사기가 꺾이는 엄청난 치명타가 될 것이 분명했고, 일본군에게는 엄청난 정신적 승리를 안겨줄 것이었다.

하지만 맥아더는 병사를 버려둔 채 떠나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맥아더는 필리핀에서 탈출하여 호주로 피신했고, 그가 떠나자마자 우려는 현실이 되고 만다.

일본군이 마침내 필리핀을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도조와 일본군의 사기를 크게 올려주는 승리였다.

유럽에서는 독일이 소련을 침공 중이었다.

히틀러는 최전선에 백만명의 군대를 배치했다.

히틀러가 소련을 점령한다면 추축국이 유럽과 아시아를 정복함으로써 전 세계 38%가 넘는 지역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1941년 10월 2일,

히틀러는 소련의 수도인 모스크바를 점령하기 위해 공격을 시작한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양측 모두 큰 손실을 입었다.

일주일 만에 독일은 50만에 가까운 소련군을 생포한다.

스탈린은 도저히 히틀러를 저지하는 방법이 없었고,
수도를 버리고 도피하려던 찰나, 히틀러가 가장 두려워하던 장애물이 나타났다.

그것은 바로 소련의 겨울이었다.!

독일군의 전쟁 물자는 소련의 추운 겨울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결국 독일군은 소련군에게 압도당해 버리고,

히틀러의 나치군은 패배하게 된다.

미국은 전세를 뒤집을 만한 정보를 얻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1942년 5월 마침내 미해군이 루스벨트가 기다려왔던 소식을 전한다.

해독된 암호에는 일본의 다음 공격목표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들어있었다.

바로 미드웨이 제도였다.

일본과 미국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미드웨이 제도에는 미국의 중요한 비행기지가 있었다.

일본이 이곳을 점령한다면 일본은 태평양 전체를 장악할 수 있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 공격에 대한 전초기지가 될 수도 있었다.

진주만공습 이후 미국의 항공모함은 태평양에 겨우 3척이 있는 상황이었다.

루스벨트는 이번이 일본을 저지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

남아있는 항공모함 3척을 모두 미드웨이로 보내어 매복한 채 일본 함대에 대한 기습공격을 준비한다.

1942년 6월 4일 미군의 함대는 조용히 미드웨이 제도 주변에 정박했다.

그리고 일본 해군이 수평선에 나타나자 미군은 기습공격을 개시했다.

단 6분 만에 일본의 항공모함 4척이 파괴되었다.!!

모두 진주만 공습에 투입되었던 항공모함들이었으며
일본군 3천여 명이 사망했다.

이로써 미국은 일본에게 처음으로 참패를 안겨주게 된다.

도조 히데키에게 미드웨이 해전의 패배는 굴욕적인 사건이었다.

유럽에서는 히틀러가 모스크바에서 당했던 참패로 인해 충격에 빠져있었다.

독일군과 소련군 간의 격전이 계속되면서 양측의 사망자는 100만 명을 훨씬 웃돌았다.

히틀러는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스탈린 그라드에 100만 명의 병력을 진군시킨다.

히틀러는 스탈린의 이름과 같은 지역을 공략하여 스탈린의 자존심을 긁으려고 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히틀러는 결코 후퇴도 항복도 허용하지 않았다.

스탈린에게 자신의 이름을 붙인 스탈린그라드는 너무나도 특별한 도시였고, 어떤 희생을 치러서라도
지켜내야 할 곳이었다.

이성을 잃은 히틀러는 자신의 병사들을 끊임없이 사지로 내몰았고, 독일군은 7초에 한 명씩 목숨을 잃었다.

독일군은 큰 혼란에 빠졌고 세계정복에 다가간 듯했던 히틀러는 자신의 숙적이 승리를 선언하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패배를 맞이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루스벨트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스탈린이 혼자의 힘으로 히틀러를 무너뜨린다면 이후에는 유럽의 정복을 노릴 것이고 이는 독재자만 바뀐 셈이었다.

연합국의 지도자들은 대응책을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처칠은 연합군의 대거투입을 거부하고 대신 주변부를 공략해서 독일의 기반을 약화시키는 방안을 
제안했다.

루스벨트는 프랑스를 거쳐 독일을 정면으로 공격하자는 입장이었다.

결국 연합국은 시칠리아 섬을 통해 유럽으로 진격하기로 합의한다.

1943년 7월 10일 상륙이 시작된다.

연합군 16만 명이 시칠리아 섬에 상륙했다.

됭케르크 철수 이후 처음으로 시작하는 대 유럽공세였다.

그중에는 지휘관 조지 패튼 중장이 있었다.

1차 대전 이후로 패튼은 미국의 기갑부대를 연대규모에서 탱크 8만 8천대를 보유한 기갑사단으로 
키워냈다.

시칠리아 섬에 상륙한 연합군은 시찰리아에 주도 팔레르모를 접수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영국 사령관 몽고메리가 작전을 지휘했다.

몽고메리의 작전은 영국군이 동부해안을 떠나 진격하고 미군이 후방지원을 하는 형태였다.

패튼은 이를 미군의 모욕으로 받아들이고 직접 작전을 세우게 된다.

패튼은 자신이 세운 작전에 대한 승인을 받아내고 팔레르모 공격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패튼은 몽고메리의 명령을 무시하고,

1943년 7월 18일 조지 패튼 장군 휘하에 미군은 팔레르모에 대한 공격을 개시한다.

그리고 막강한 기세로 적을 몰아내며 단 3일 만에 도시를 점령한다.

1943년 9월 3일 연합군은 이탈리아 본토에 상륙하여 이탈리아군 수천 명을 격퇴한다.

이곳은 이탈리아의 한 미군 후송병원.

조지 패튼은 이 병사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결국 그 사건으로 인해 조지패튼은 전장에서 배제되었다.

연합군은 이탈리아를 하나씩 하나씩 접수하기 시작했다.
 
무솔리니는 자신이 사랑하는 제국이 무너져가는 모습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무솔리니는 히틀러로부터 긴급호출을 받는다.

무솔리니는 이탈리아를 끝까지 지키라는 지시를 받고 로마로 돌아간다.

하지만 무솔리니는 두 달도 지나지 않아 연합국에게 항복을 선언하다.

히틀러는 한때 우상으로 여기던 인물이 수치스럽게 몰락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는 연합국의 다음목표가 자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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